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한우송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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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 [kreuz] 쪽지 캡슐

2002-01-10 ㅣ No.28406

 

한우송님, 반갑습니다.

글을 쓰시는 모양새가 어디서 많이 뵌 분이다...싶었는데,

불쏘시개 게시판과, 월간 교회와 신앙 홈페이지에 글 쓰신 한베드로님 맞으시죠?

그 열성만큼은 존경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한 열정에

바오로 사도의 이성까지 더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개신교에 대해 상당히 불만스럽게 생각하시는 것까지는

사상의 자유이므로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님이 그토록 가톨릭교회와 교황님을 수장으로 한 교계제도와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교황 요한 23세께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지도하셨던 제2차바티칸공의회와,

그밖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치운동에 대해

그토록 극렬하게 반대 의사표시로 보일 만큼의 글을

쓰셔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가지 님의 글을 지적하기 전에

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은, ’개신교’를 경험하신 적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예배에 참석해보고, 목사님들과 대화를 해보고,

광신자들 말고, 평범한 신자들의 삶을 들여다보신 적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삶이 그토록 욕정적이며 탐욕스럽고

소돔과 고모라는 눈빛으로 보일 만큼 더럽던가요?

저는 다른 게시판에서 가톨릭을 ’바빌론 음녀’라고 하는 정신나간 인간들을 종종 만납니다.

가톨릭 교리에 대해 부정하며 사탄의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놀랍게도 이분들은 가톨릭 교리서를 본 적도 없으며,

미사 참례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알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피상적으로 들은 몇 가지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중 하나라고 한다면

나중에 하느님께 뭐라고 변명하시겠습니까?

"네가 내 아들보고 사탄이라고 했다면서?.."

 

1.

’처녀’라는 단어는 원래 이사야서에서는 그냥 젊은 여자(alma)로 표기된 것을

번역한 사람들이 ’처녀’라고 번역해놓은 것이고,

이것이 원래 한자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임을 생각할 때

우리말 ’處女’를 확대해석해서

하느님께서 머물러 쉬실 ’處女’라고 해석하시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성모님의 처녀성에 대한 믿음은

초기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핵심적 신앙의 일부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동정 성모님에 대한 믿음이 언제부터 시작된 줄은 아시겠지요? 2세기 말쯤에 세례식 신앙고백문에 나온다는군요.)

(-님의 글 ’개신교의 가면을 벗겨라(1) 중에 나오는 내용에 관한 것임)

 

2.

그리고 님의 글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저 성서 뒤져보느라(혹시 제가 잘못 본 줄 알고) 무지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님의 주장은 성서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무아래에서 쉬고 계실 때에 어린아이들이 찾아왔는데

제자들은 쉬고 계신 예수께  어린이들을 가지 못하게 말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직접 예수께 아이들을 인도하시고는

이분이 선생님이시다 하고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님의 글 -개신교의 가면을 벗겨라(1) 중에서)

 

마태오 마르코 루가 복음 어느 곳에도

예수님과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 성모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갈라진 믿음의 형제들을 비난하기 위한 주장의 근거로

성서를 왜곡하시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성서를 확실하게 인용해주시기 바랍니다.

 

3.

사제의 결혼에 관한 님의 글에 대해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우선은 그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12사도는 결혼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장모까지 챙길 정도의 사람이었지요.

사제 독신제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제도입니다.

방탕한 루크레치아라고 자주 오해되는 여자도 있는데 이 여자는 교황님의 딸이거든요.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독신제 실시 이전 교황님과 그 당시 가톨릭신자들은

모두 지옥행이요, 적그리스도가 됩니다.

 

4.

님의 글의 성서 해석을 보면서

개신교 성서해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해석 자체가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근거 없이 두 구절 세 구절을 연관된다고 이어붙인 부분이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혜를 ’훈계하시는 하느님의 성령’이라고 해석하시고,

잠언서의 ’집’을 ’성모 마리아’라고 해석하시는 부분이 그러했습니다.

몇 번을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왜 그렇게’ 해석이 되는지

도무지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개신교 교파가 많이 갈라진다고 걱정하셨는데,

개신교 교파가 그토록 많이 갈라지는 이유는 바로

한우송님처럼 ’자의적인 성서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5.

면죄부는 분명 부끄러운 가톨릭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고해성사 보속의 의미였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마르틴 루터의 등장은 썩어가던 교회를 향한 외침이었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가톨릭 교회 내의 개혁의 시선도 생겨났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더 낫게 되는 시작입니다.

무조건 가톨릭은 잘한 것이고 개신교가 잘못한 것이라고만 외면해버리기에는

갈라진 믿음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습니다.

 

6.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성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각 사람의 소속 종파보다는

그 사람의 행위와 선행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더군다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음을 설파하는 요즘의 시기에

개신교 신자를 적그리스도로 돌리고,

우리보다 더 바르게 살아가는 목사님과 신자분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한

예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적그리스도의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신교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가톨릭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톨릭 신자임이 자랑스러웠지만,

한우송님을 보고는 제가 가톨릭 신자임이 부끄러워졌습니다.

 

7.

사제가 사제직을 그만두고 혼인하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제여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하느님의 뜻을 잘못 읽고 신학교에 가신 분이실 수도 있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뒤늦게라도 그분의 길을 바로잡아주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단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교회와의 약속, 독신 생활을 통한 정결의 약속을 깨트린 것 때문에

그 벌의 의미로 성사 생활이 제약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 역시 성서에 근거한 의무라기보다는

역사적 제도를 통한 한 도구라고 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사제 독신제가 엄격한 성서적 근거에 의한 것이라면

독신제 이전의 혼인했던 사제들과 교황님들은 적그리도가 됩니까?

또,  ’사제 독신제 철폐’라는 제안이 어디에 감히 나오겠습니까?

 

8.

개신교의 가면을 벗겨라(2) 라는 글에서 님은 큰 글씨로

’가톨릭에서 성서의 자유해석을 금한다는 의미는?’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 글에서 오히려 개신교보다 더 많은 자유해석을 읽고 저는 황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싹 왜곡시켜 버리면 되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용어들을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지않는

어렵고 요상한 단어만을 고집하고,

문장도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뒤섞어 배열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보지도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놓고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원래가 어려운 것이니

자신들이 설명 해주는 말을 듣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아무것에도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들이 제시하고  해석해 주는 것만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개신교 신자 평신도들이 훨씬 더 성서를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과감히 외면을 하셨더군요.

그리고, 평신도들이 님이 그렇게 혐오하시는 ’자유해석’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목사가 제시하는 규범적 성서 해석을 거부한다는 증거로는 보이지 않으시는지요?

그렇게 따지자면 오히려 성서 해석의 규범화는

가톨릭에서 더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되는 결과를 낳지 않겠습니까?

 

9.

님은 개신교에 대해 비난하는 근거로 모든 중심을

’성모 마리아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이지 성모님이 아닙니다.

성모님도 예수님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사도신경에서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한 그것들에 대한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일 뿐,

그 이외의 것을 잃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성모님에 대한 믿음 없이도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도 계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해 관심도 없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하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갈라진 믿음의 형제들을 적 그리스도로 몰아세우기 위해

성모님을 내세우는 것은 합당한 근거도 아니며,

성모님 또한 자신의 아들딸들을 사탄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여신화 하는 것을 바라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10.

님에게 책 한 권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값도 싸고(두꺼운 책인데 6,800원이더군요!)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니 이단 잡종 도서와도 다릅니다.

더군다나 예수회 대학인 서강대학교 펴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하나인 믿음’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훌륭한 신학자인 저자들의 이름이

한 페이지나 나열되어 있을 만큼 탄탄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다 보신 후에,

개신교 예배(장로교나 감리교, 침례교를 추천(순복음은 권장 안 함))에

한번 참석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신교 출신입니다.

약 25년동안 개신교 신자이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제가 응답해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제가 외곩수로 빠져들 것을 염려하신 하느님의 배려 덕분에

훌륭한 신부님, 목사님, 전도사님, 부제님들과

많은 평신도분들을 만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하느님께 대한 열망으로 넘치며,

그분의 뜻을 세상에 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이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해주기 위해 애쓰던 그분들이

만약 적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저는 차라리 적그리스도가 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단지 교리 하나 때문에 누군가를 적그리스도로 몰아버리는 것은

얼마나 손쉬우며 간단한 자기 기망입니까?

오직 믿음으로만을 외치는 그들의 선행을 보고 있자니

행하지 않는 우리가 오히려 이단으로 몰릴 것 같으십니까?

그래서 선수쳐서 형제들을 적그리스도라 하고 나니

그들의 선행까지 모조리 지옥에 빠질 행동이 되고,

그런 결과로 우리가 선행 하지 않는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분명, 개신교는 출발이 잘못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원인은 가톨릭에서 제공했고,

또,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수백년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적그리스도라구요?

 

분명, 누군가를 포용하는 것은 욕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욕하는 쪽을 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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