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제관 일기103/김강정 시몬 신부

스크랩 인쇄

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8-13 ㅣ No.4358

          사제관 일기 103  

주여.

이 불충하고 어리석은 종을 용서하소서.

당신만 온전히 사랑하라 하셨거늘,

절반 밖에 더는 드리지 못함을.....

남은 절반은 어쩔 수 없이 내어놓지 못함을.....

차마 용서하소서.....

 

당신께 마저 바치기에는

지금의 것은 너무 크옵고, 아름다운 것뿐이옵니다.

끊어 버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것 투성이옵니다.

도저히 끊을 수 없고 끊지 못할,

아아 세속의 아름다움들이여.....

 

그랬습니다, 주여....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당신의 향기보다 세상의 향기가 더 좋았습니다.

당신 안에서의 안식보다 세상의 잠이 더 깊고 편했으며,

당신의 유혹보다 세상의 유혹이 더 많이 달콤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따르다가도 세상이 부르는 손짓에

번번이 끌려만 다녔습니다.

 

당신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싶거늘,

당신은 한가지를 마저 버려라 하십니다.

차마 한 가지라도 잃고 싶지 않기에....,

차마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싶기에.....,

오늘도 이렇듯 뼈저린 눈물과 회한의 긴 밤이 계속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을 함께 사랑하지 못함을,

눈물로서 배우는 이 처절한 사제수업......

주여,

제게서 속된 것을 지워주시고,

흔들림 없이 저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제 길이 마냥 꽃길이 아닌, 가시의 밭길이어야 함을

더욱 뼈저리게 알게 하소서.

 

더 큰사랑을 위해, 작은 사랑을 내어놓고,

더 크게 아프고,

더 많이 아프고,

더 깊이 아픈,

그런 밤을 만들어주소서.

 

하여,

더 외롭고 더 고독해진 연후에야 깨닫게 하소서.

당신을 향해 흘려온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천번만번 저의 행복은 당신뿐이라 그리 고백하도록,

이 밤도,

더 많이 아프게 하시고,

더 크게 아프게 하소서.....

 

 



47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