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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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83/ 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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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7-02 ㅣ No.3985

 

             사제관 일기 83  

 

"신부님, 저는 그저 발바닥 신자일 뿐입니다....

저 같은 놈이 직분을 맡으면 동네 개도 비웃을 겁니다."

"예, 저도 만만찮습니다. 저는 주둥이 신부니까요.....

주둥이보다는 그나마 발바닥으로 사는 편이 더 낫겠지요...."

.............

좀 전까지 어느 분과 오갔던 대화의 한 소절입니다.

당신의 자질을 운운하며 보직을 거두어 달라는 청에, 만류하며 드린 말씀,

혹여 말로써 무례를 삼았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자격으로 평한다면,

우리 중에 누구도 이름 석자 당당히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늘 앞에서는 모두가 자격미달의 낙인을 받은 불량품들입니다.

당신 말씀처럼, 어쩌면 동네 개조차 비웃을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동네 개가 비웃을 일은 이미 한 사제 안에서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저 같은 자가 하늘의 명(命)으로 서품 되었음이 더 가소로운 일입니다.   

자격의 순번으로 부르셨다면, 영원히 호명조차 될 수 없는 낙제생....

그 아둔한 자가 천상 지혜를 받드는 놀라운 보직을 하명 받았습니다.

동네 개가 비웃고, 세상마저 손가락질 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주시는 은총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칠뜨기 같은 자였지만, 저를 세상 앞에 웃음거리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더 귀한 이름으로 세상 앞에다 세워주셨습니다.

.................

그러니,

자괴심을 버리고, 순연히 그 명(命)을 받드시라 말씀드립니다.

제가 드리는 보직이 아니라, 주님이 명하신 직분이옵기, 삼가 받드십시오.

사람의 갈 길은 하늘이 정하시고, 하늘이 도우신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실 일이오니,

진실로 하늘께 배례하며, 열과 성으로 임한다면,  

하늘도 동하여 부족의 분을 능히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

입만 가지고도 사는 신부가 있는데, 발로써 못다 살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 발로써 제 말씀을 앞서 가신다면,

저보다 훨씬 더 합당한 자격자로 명부에 오르실 겁니다.

하늘이 주신 이 귀한 직분에 감사하시고,

이제 조용히 위임의 하명을 받드시라 말씀드립니다.

..........

하마 하늘은 당신을 호명하시어 때를 기다려 계십니다.

이제 당신의 큰 소리만을 하늘이 보고 계시거늘,

그 소리로 하늘의 기쁨 주신다면, 그 기쁨 제 것으로도 삼겠습니다..........

 

                                       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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