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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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일기78/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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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6-25 ㅣ No.3906

 

              사제관 일기 78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지난밤의 꿈도 좋았지만, 아침부터 마음이 들뜨고 하루가 기뻤습니다.

저는 주일만 되면 참 즐거워집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즐겁고, 그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나봅니다.

일주일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어떻게든 잠깐만이라도 붙들고 싶은데,

도무지 꼬이지가 않습니다.

가끔씩은 사제관에도 오라며 청해보지만, 대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버립니다.

아직도 이들이 넘어서기에는 제 문턱이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

어떻게든 제 높이를 낮추려고 노력은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예전부터 얼굴이 험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온 편이었고,

웃지 않고 있으면, 꼭 불한당같아 겁이 난다던 교우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헤죽거리며 부러라도 웃음을 팔고 다닐 때도 많습니다.

대하기 어렵다는 소리보다는,

차라리 무게없이 논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 낫겠기 때문입니다.

.......

그렇지만, 무작정 웃고 다닌다 해서, 높이를 줄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높낮이를 달리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진솔하고 솔직한 면면의 인간적인 사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놀고, 함께 가는....

사람들은 바로 그 모습의 사제를 원하고 있고,

바로 그 거리에서 만나지는 사제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인채 함박웃음을 지어보이시던 신부님한테서

인간적인 냄새의 하느님을 보았다고 고백하던 한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제의 인간적인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만 있다면,

저역시, 그런 모습의 사제이고 싶습니다.

사제와 신자라는 거리보다는 좀더 인간적인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단촐하지만, 이것이 제 방이라며 눈구경도 시켜드리고 싶고,

제 손으로 올리는 차 한 잔을 대접하고도 싶습니다.

누구든 밥상으로 불러와 한끼 밥이라도 나누고,

흉허물 없이, 술한잔 나누자며 수화기를 들 수 있는, 그런 사이이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부생활의 잔잔한 재미가 되고, 감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직도 낮추어야 할 높이가 많이 남았다면, 마저 낮추어 가겠습니다.

오르기는 쉬워도 내려서기는 어렵다는 산.

한번 내려 서 보면 다시는 오르지 않는다는 그 교만의 산.

이제 그 산을 조용히 내려와, 겸허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사람 편으로 한걸음씩 더 가까이 발을 딛으면서,

인간적인 냄새를 통해 하느님의 향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

새순에 따 놓았다는 올 작설이 아직 그대로 인채 남아있습니다.

마치 멋없는 신부의 삶을 대변이라도 하는듯 봉인이 풀리지 않은 작설차...

누가 저의 귀한 첫 손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당신에게 먼저 그 초대장을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당신께 제일 먼저 그 차 맛을 보여드릴 겁니다.

왜냐면... 바로 당신은 제가 믿는 유일한 벗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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