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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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작은 축복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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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3-10-15 ㅣ No.5711

             

             

         

     

            나는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얻어 맞아 용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잃은 용기를 되살려 주고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해 주리라.

            이사야 57, 15

     

      안녕하세요.

      기온이 많이 하강해 날씨가 조금 추워졌네요.

      환절기 감기에 조심하시고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외출하세요.^^

      어제 제 마음엔 약간의 작은 이벤트(?)가 있었답니다.

      어제 저녁,

      저는 모처럼 매일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갔었고

      미사중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제 뒤에 서 있는 분께  

      몸을 돌리는 순간 제겐 깜짝 놀랄일이 벌어졌었답니다.

      제 바로 뒷 좌석엔 얼굴 한 쪽 부분에

      기다란 혹(?)같은게 있어(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얼굴 장애를 지닌 한 젊은 자매님이 서 있었어요.

      저는 그 자매님의 혹이 달린 기형적인 얼굴 모습에

      순간적으로 눈이 동그래졌었고

      그 자매님은 저의 놀란 얼굴과 마주친 아주 짧은 순간

      아주 재빠르게 자신의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림으로써

      평화의 인사를 나누려고 하는 저를 외면해 버리더군요.

      가슴 아프게도 그 순간은 아주 짧은 순간었지만,

      그리고 그 동안 숱하게도 그녀 홀로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던

      많은 가슴 아픈 순간중의 한 부분이었겠지만

      그 얼굴 장애를 지닌, 선해 보였던 젊은 자매님은

      자신의 얼굴 기형에 놀란 제 얼굴을 보고

      자신의 기형적인 얼굴을 저로부터 황급히 돌림으로써

      애써 또 한번 자신의 얼굴 장애를 확인해야 하는

      가슴 아픈 순간이었답니다.

      저는 저를 외면해 버린 그 자매님께 약간의 무안함과

      얼굴 장애에 대한 놀라움에 주춤 주춤 약간 당황한 모습으로

      그 자매님께 평화의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서서

      계속 미사를 드렸지만 순간적으로 놀란 제 모습을 보고

      재빠르게 자신의 얼굴을 돌려버린...

      그 자매님의 눈빛이 제대 위 불빛속에 어른거려

      미사끝날 때까지 내내 분심속에서 제대위에 걸려있는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주님은, 왜?, 저 자매님께....?"

      황급히 얼굴을 돌렸던 그녀의 눈빛.

      그건 오래도록 상처받고 아픈 눈빛이었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찰나적으로 보았던 그 자매님 눈빛이 잊혀지지 않네요.

      미사 끝나고 조심스레 뒤를 돌아 보며 나올 때 보니

      그 젊은 자매님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더군요.

      타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혹이 달린 얼굴을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마치 다른 이들을 위한 듯

      의식적으로 아래까지 깊숙히 미사보를 내려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기도하는 그 모습은

      무척 선해 보이고 여려 보였답니다.

      그 저녁, 그녀의 머리 위엔 성당의 불빛들만이

      아주 부드럽고도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비록 타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기형이지만

      저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내적 평화로 충만해 보이는

      아름다움이 어려있었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그녀가 참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스산한 가을 바람과 가로등 그늘 아래 흩어지는 낙엽들을 밟으며

      집에 돌아오는 제 마음은

      여전히 그 자매님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답니다.

      저는 그 자매님을 전혀 모르지만

      결코 값싼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정상인이, 자신이 정상인임에 새삼 감사하고 혹은 안도하며

      장애를 지닌 그녀에게

      마치 연민의 적선을 퍼 주는 듯한 감정이 아닌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녀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축복"을 보내고 싶어요.

      제가 보내는 그 작은 축복이 너무 희미하고 약해

      가다가 도중에 공중에서 흩어져 버린다 해도

      그리고 내일 모레, 며칠 후 쯤 그녀의 존재를 제가 서서히

      잊어간다해도 지금 이 순간 제 마음으로부터 아주 작은

      축복의 속삭임을 그녀에게 보내고 싶어요...

      "비록 힘들지만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당신은 당당히

      세상의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오늘도 기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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