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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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박미카엘님, 차라리 허무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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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정 [annateresa] 쪽지 캡슐

2002-11-17 ㅣ No.43678

 

오늘 올리신 박미카엘님의 글을 읽으니 차라리 허무합니다.

지난번에 그분이 올리신 글을 읽었을 때,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글을 "논리적인 듯" 보이게 이끌어 나가시는

그 솜씨 하나만은 대단하다고 인정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론을 나름대로 쓰면서 긴장도 했던 것인데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의 글에 그토록 긴장하며 반론을 폈던 저 자신이 허무할 뿐입니다.

 

저와 더불어 노조의 반대편 입장에 서 계신 여러 분들은

이제껏 올렸던 자신의 모든 글에서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셨습니다.

어쩌면 노조원들을 상대할 때마다 한 얘기를 또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박미카엘님의 글에서는 굳이 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박미카엘님의 "이유"라는 것 역시 노조원들에게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그들의 주장과 어차피 대동소이할 것이기에

또 주절주절 열거할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구요.

 

그런데 바로 그 점을 들어서 중요한 요점은 모두 피해갔다고 하시는군요.

그리고 "불의"를 "불의"가 아니라 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 하시고

저와 같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냐고 하시는군요. 이거야 원...

이제껏 게시판에서 그분이 읽으셨던 글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을까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박미카엘님은 그런 자신의 견해를 마치 하느님의 뜻이요 절대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 단정적으로 외치셨기에 그런 말을 들으셨던 것인데,

알고 그러시는 것인지 모르고 그러시는 것인지...

 

바로 위와 같은 제 말을 읽고서도 또 그러시겠네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난 네가 싫어." 와 "난 너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보고 싶어." 이 두 문장은

아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어차피 속뜻은 같은 거라고 전 보는데요.

다만 정확히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언제 그랬냐고

자기를 매도한답시고 펄펄 뛰는 모습에 실소가 나옵니다.

 

우선 "평화를 심는 일"과 "대화"의 문제라면

과연 그 대화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인가

아니면 무조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주는 식의 대화인가가 문제인데,

저들 노조는 처음부터 불법적으로 파업에 들어갔고

그들이 원하는 대화라는 것은 자신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달라는 그런 것입니다.

재단과의 대화가 처음부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방적인 파업 재개와 막무가내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태도에서

그 동안과 같은 단절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또 한 얘기 또 하자는 식으로 근거 제시 운운 하시겠지요.

근래 한 달 동안에 올라온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물론 저 외에 다른 분들의 글을 더 열심히 읽으셔야겠지요.

 

"내가 언제 그들에게 맞춰서 대화해 주는 게 평화를 심는 일이라고 했느냐?"

하시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만 그런 뜻인 건 아니라고 봅니다.

내용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이지요.

 

박미카엘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님의 지난 번 글을 읽고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앞서 올렸던 제 글을 상당 부분 인용하셨기에

어쩌면 그에 대해 반론을 해야 할 의무가 내게도 조금은 있을 것 같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래서 열심히 반론을 했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님은 아무리 내가 언제 그랬냐면서

님이 하지도 않은 말들을 제가 지어내서 했다고 하시지만

이 게시판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바보가 아닌데

그 정도를 눈치 못챈단 말입니까?

오직 님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저의 속임수였단 말입니까?

 

님은 여전히 불투명한 커튼 뒤에 숨어서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이제 마구잡이로 매도하고 계십니다.

이곳에서 님을 "매도"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님이 진정으로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도록 계속하여 글을 쓰신

바로 님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제발 님 자신을 자꾸 예수님이나 위대한 성인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에서 베드로 사도께서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할례를 주장하는 이들이 오니까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을 피하다 바울로 사도에게 면박을 받으셨오. 그러나, 베드로 사도께서는 그러한 직언을 진실로 받아들이셨고 바로 이분이 우리 가톨릭의 수장이셨습니다.

 

이보세요. 그러면 님이 말하는 "재단 옹호자"들은 바로 다른 사도들이고

그에 대해 직언을 하신 바오로 사도는 바로 박미카엘님, 본인이란 것입니까?

그 비유를 지금 적절하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지난번에는 대사제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본인 자신의 행동을

감히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를 질타하신 것과 비교하더니, 오늘은 바오로 사도입니까?

그러지 좀 마세요.

오만함에도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님이 말하려던 것이 그리스도의 사제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구요?

그럼 이대수님을 향한 이 말은 뭡니까?

 

님의 말처럼 가톨릭 재단 수뇌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니 성서를 인용해서는 안되면 예수님과 그분의 사도들께선 바리사이파와 대사제들의 위선을 어떻게 지적하실 수 있었단 말이요?

 

이제 와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도 보일 건 다 보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논지가 그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님은 자신의 행동을 감히 예수님과 비교했기에

아무리 이치에 닿는 것 같아도, 결국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그럴 만한 권위가 있으시지만 님께는 그럴 만한 권위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서 해석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님의 성서 해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서 구절을 이용하여 남을 질타하실 자격이 있으시지만

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님은 예수님과 본인 자신을 거의 동격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든 군중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예수를 두려워하였던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지금 어떤 사람이 나와서 그러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고 합시다. 그 변론자가 메시야여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은 바울로 사도님이나 여러분들과 같이 다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뿐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 생각은 님과 매우매우 다릅니다.

군중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탄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은,

그분의 말씀이 절대 진리이고, 그분이 최상의 권위를 가지신 메시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당신 손으로 꼭 12명만을 뽑아 세우시며,

최초의 후계자로 임명하셨던 그분들이

박미카엘님 본인과 동격이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지나친 오만입니다.

바오로는 했는데 나는 왜 안되느냐는 식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참, 또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시겠네요.

 

아, 정말 속수무책이네요.

(아, 물론 바오로는 12사도들 중 한 분이 아니라는 거 저도 압니다.

 괜히 꼬투리 잡힐까봐...)

 

님의 글이 앞서의 제 글을 모두 뒤집어 놓았기 때문에 제가 흥분했다고 하시는데

그것도 역시 님의 오만한 생각일 뿐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올리신 님의 글에서는 저번 글에서 느꼈던 긴장감조차 느낄 수 없네요.

아주 만만치않은 반격을 예상했었는데, 솔직히 예상에 좀 못 미칩니다.

 

저를 비롯한 재단 옹호자들에게 올리신 글에 1 이라고 번호를 달아 놓으신 걸 보니

앞으로는 더욱 지루한 이야기가 이어질 모양인데, 이젠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일침을 놓든 펄펄 뛰든

그냥 마음대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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