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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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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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2-09-15 ㅣ No.38765

 가끔씩 피정을 갈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분들은 좀처럼 내기 힘든 그런 시간들을 허락 받아 피정을 하게됩니다.

피정을 하는 동안에 세상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90년도에 피정을 할 때는 "삼당합당"이라는 일이 있었고, 나중에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91년도 피정 때는 "걸프전"이 발발했고, 역시 나중에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2001년 겨울 피정 때는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서 많은 축사가 무너졌고, 우리 성당도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벽에 금이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1년도 가을 피정 때는 "9.11" 테러 사건이 있었고, 한편의 영화 같은 장면을 나중에 볼 수 있었습니다.

2002년도 피정 때는 "성모병원"에 대한 일이 있었고, 역시 나중에 알았습니다.

 

 며칠전 한 자매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도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도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희, 노, 애, 락, 그리고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탐욕과 절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아래 그늘진 어둠이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기도해 드려하는 하는 분들이 참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루에 6시간씩 성체조배를 하시는 그분은 시골에 사는 제가 오히려 부럽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추석을 앞둔 대목 장날입니다.

길가에는 고추를 파시는 농부들이 있습니다. 뻥튀기를 파시는 아저씨도 있습니다. 싱싱한 해물을 파시는 부부도 있습니다. 돼지 껍데기와 순대 그리고 소주와 막걸리를 파시는 걸죽한 목소리의 아주머니도 계십니다. 온갖 그릇을 다 파시는 젊은 아저씨도 계십니다. 먼가 서로 기분이 상한지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야채 장수 부부도 있습니다.

 

 파장에 가까워지자 떨이라고 외치면서 바구니에 수북히 물건을 담아서 넉넉하게 주는 아저씨도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이제 물건을 챙기면서 다음 장으로 갈 준비를 하시는 그분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동네 루시아 자매님은 옥수수 말린 것을 가져다가 뻥튀기 아저씨에게 갔다 주셨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 되겠지요....

바오로 형제님은 동네 분들과 함께 쌀 10가마를 가지고 강원도 수해현장에 다녀오셨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물보다, 라면보다 쌀을 더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산다는 것이 피정을 할 때처럼 세상사의 번뇌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다는 것은 도시의 화려한 모습에서도, 시골의 장터에서도 그렇게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이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피정에서 하신 추기경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쩌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 아닐까요...."

산다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또한 가슴에서 팔로의 긴 여행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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