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자유게시판

타종교 체험(1) 하느님께도 별명이 있을까요?

스크랩 인쇄

조승연 [communion] 쪽지 캡슐

2002-06-14 ㅣ No.35011

전 미션으로 유명한 대학을 다녔었습니다.

8학기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채플(예배)을 들어야 했죠.

물론 그 예배에 빠지는 것은 자유지만..

그 자유에 대한 대가는 무척이나 큰 것이었습니다.

한 학기라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안 시켜준다고 했으니까요.

아니, 졸업을 시켜주긴 하되 한 학기 이수 못할 때마다 A4 용지로 20장에 가까운 리포트를 써서 제출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대학 교회는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우뚝 솟은 으리번쩍한 건물이었습니다.

내부로 발을 들여놓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최신식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었구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등록금 비싸기로 전국에서 유명한 학교에서 장학금 한번 받아보지 못한 저로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습니다.

아무리 개신교 학교라고 하더라도..

정말 상식적인 시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 뿐인가요..

믿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대학교회는..

예배시간 정각이 되면 가차없이 문을 안에서 잠궈 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채플 시간이 가까워지면 정문에서부터 그 높은 계단을 달음박쳐 올라가는 학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들 중 하나였죠.)

평소에는 내숭을 떨던 아리따운 처자들이 채플 지각에는 장사 없다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도 계단을 한번에 두 세개씩 마구 뛰어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리고도 늦은 사람들은..

굳게 잠긴 교회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아저씨. 한번만 봐주세요.."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를 외치곤 했답니다.

 

늘 불만이 가득했지만.. 어쩌겠습니까..

입학원서를 제출한 순간.. 채플은 제 운명이 돼버린 것을요.

그저 인근에 위치한 다른 가톨릭계 대학과 비교하며 제 기구한 팔자를 탓하곤 했죠.

그 학교는 입학할 때 입학 미사만 한번 드리면 끝이라고 들었거든요.

그것도 의무는 아니고 원하는 신입생에 한해서요.

그 말을 들으며 전.. 역시 가톨릭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거룩한 전통을 가진 종교라니까.. 라는 말을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지런히 대학교회로 이르는 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신입생 시절에는...

처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따분하고 지겨운 것이 예배시간이었습니다.

이 예배라는 것이..

너무 맹숭맹숭하고 밋밋해서 마치 화장실에 휴지 안 가지고 갔다가 그냥 나온 것처럼..

영 개운치 못하더군요.

무슨 놈의 예배라는 게 ’기도합시다’로 시작해서 ’기도합시다’로 끝나냐..

그리고 오로지 성경말씀으로만 산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배 시간 중에 성경을 봉독하는 꼴을 한번도 볼 수 없을까나...

 

가톨릭에선 미사 때 ’말씀의 전례’ 시간에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꼬박꼬박 성서의 말씀을 읽잖아요.

’매일 미사’ 책을 3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으면 성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읽게 된다고도 하니까요.  

근데 예배는 목사님의 설교로 시작해서.. 찬송가 몇 곡 부른 다음.. 또 기도합시다.. 이러면서 마침기도로 끝나는 겁니다..

진짜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 목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디 그 뿐인가요..

미사 시간에 부르는 성가는..

하이든씨, 베토벤씨, 바하씨, 헨델씨..

이름만 대면 산천초목이 바르르 떨만큼 유명한 음악가들이 작곡한 성가들이잖아요.

성가 자체가 예술인지라..

대미사 때 성가대나 합창단에서 특송을 할라치면..

이것이야말로 천상의 음악이다.. 싶을 정도로 황홀지경에 빠지게 되곤 했는데..

예배 때 부르는 찬송가는... 영 시덥잖기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귀만 고급이 돼서.. 이런 찬송가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예배 때마다 전 시큰둥해서 부지런히 딴짓을 하곤 했습니다.

몰래 과자 먹기, 숙제 하기, 신문 보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기, 화장 고치기, 이어폰으로 음악 듣기..

교회에 들어가면 오늘은 뭘 하며 시간을 때우나.. 이런 궁리로 40여분을 보냈습니다.

에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침 기도를 할라치면 자리를 박차고 먼저 일어나기도 했구요.

은연 중에 개신교를 얕잡아본 거지요.

 

게다가 그렇게 딴짓을 하며 얌전히라도 있었으면 차라리 나을 것이지..

예배 중에 치밀어오는 울화를 참지 못해..

전 개신교 신자들의 눈에 한없이 거슬릴 만한 짓들을 하곤 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면 기를 쓰고 성호를 긋고..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하느님’이라고 발음하고..

’주님의 기도’를 할 때면 굳이 제가 아는 바대로 기도하고..

찬송가 중에 가톨릭 성가와 멜로디는 같되 가사가 다른 찬송가가 나오면 가톨릭 성가대로 목청을 돋워가며 노래하고..

정말 미운 오리 새끼 역할을 톡톡히 했던 거죠.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심신이 피곤하고 지쳐 유난히 우울한 날이었죠.

마지못해 들어간 채플 시간에..

전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근데 목사님의 설교가 그 날따라 제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겁니다.

마음이 울컥하면서 목사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 가슴을 찌르더군요.

그리고 나서 갑자기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려왔습니다.

가톨릭의 ’청소년 성가’책에 있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이 노래가 예배 도중에 채플 합창단의 특송으로 봉헌된 겁니다.

익히 알고 있던 노래였고..

저 역시 청년미사 때 여러 번 불러봤던 경험이 있던 성가였습니다.

 

그 성가의 구절 중에는..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 가사를 듣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는 겁니다.

온 몸에 저릿저릿한 감동이 한차례 지나가면서 머리 속으로부터 심장 속까지..

갑자기 하느님의 존재가 느껴지는 듯 하더군요.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어리둥절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개신교 예배에서 이런 경험을 하다니..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전 그저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을 뿐이었거든요..

늘 온화하고 평안하게.. 그렇게 정제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요..

그 날 예배에서 느꼈던 것처럼..

무엇인가가 온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강렬한 느낌은 좀처럼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채플 시간 내내 훌쩍훌쩍 울고 나서.. 터덜터덜 강의실로 향하면서..

전 뭔가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제불능의 불쌍한 자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했던 개신교의 하나님에게 신내림을 받은 건가..

그러고나니 그 동안 제가 숱하게 불러왔던 저의 ’하느님’에 대해 묘한 배신감까지 느껴졌습니다..

아니.. 그 동안 미사 시간에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뜻뜨미지근한 응답을 하셨던 하느님께서.. 이게 어인 실수시란 말인가.. 하느님의 성총이 흐려지셨나 보다..

 

그리고 저는 이 돌발사태에 대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가며 수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Vs. 하느님..

제 머리 속의 하나님과 하느님은.. 그야말로 대결구도였거든요.

청코너~~ 개신교의 ’하나님’~~

홍코너~~ 천주교의 ’하느님’~~

이러면서 타이틀매치를 벌이시다가 결국은 ’하나님’을 보기 좋게 KO로 넉다운 시키시는 우리의 자랑스런 ’하느님’이었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대결구도를 수정해야만 제 경험이 정당화되지 뭡니까..

이건 ’하나님’에게 우리의 ’하느님’께서 결정적인 한방을 먹으신 상황이니까요..

어라.. 그게 아니었는갑다..

그래서 치열한 사고과정을 거쳐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느님의 별명이라고 생각하자.

뭐.. 이렇게 속 편하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더군요.

 

그 다음부터 전 예배 시간에 더 이상 딴지를 걸지 않았습니다.

말끝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뭐.. 그런가 보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또 그런대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찬송가도 곧잘 따라 부르고..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삼가고..

그런 식으로 준 개신교 신자 역할을 자처했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편하더군요.

악착 떨면서 굳이 제 생각만을 우기지 않고도..

전 그 시간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갑자기 간사한 모습으로 돌변해서 비겁(?)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제 모습을 하느님께서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 전 타고난 넉살을 무기로 기도하곤 했죠.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죠. 계속 그렇게 삐딱하게 굴면 사람들 째려보는 시선에 뒤통수가 구멍날 거라구요.. 주님께서 사랑하는 딸이 예배당에서 순교하는 꼴을 보셔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그렇게 전 4년 동안 미사, 예배를 오가며 박쥐생활을 했습니다.

심지어 4학년 때는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헌금 시간에..

채플 결석 1회를 제해주겠다는 교목실의 꼬임에 넘어가 헌금봉사를 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몰려보십시오.. 인간이 그렇게 비루하게 됩니다.)

제가 유난을 떠는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아는 주위 친구들은 눈을 비비며 멀뚱하게 쳐다보더군요.

그러면서 제게 하는 말이..

- 서당개 3년만에 풍월을 읊는다더니.. 미션스쿨 4년에 개종한 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전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야만 했죠.

-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동종업계인데..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리고.. 이거 한번 하면 채플 보충으로 인정해준대.. 헤헤헤..

 

뭐..

굳이 제가 제 변명을 하자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던.. 그 종교로 인해 주위 사람의 눈을 찌푸리게 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있잖아요.

주~~ 예쑤를 믿으라! 예쑤를 믿어야만 영생의 길을 얻을 수 있노라..

하면서 난데 없이 박수를 치며 ’찬미 예쑤님~~’ 이라는 노래를 불러 지나가는 행인 경기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요.

그 모습.. 전 그다지 좋게 보이진 않더군요.

 

불교 신자인 제 친구 하나는.. 염주를 팔목에 차고 있다가 그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다른 믿음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과 다른 모습을 가진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션스쿨에서의 4년 동안의 경험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개신교 신자들에게 동화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톨릭 신자일 테니까요.

 

청소년 성가 중에 이런 성가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 떨어져 헤어져 피어난대도 똑같이 하늘 우러러 향내음을 풍길 꽃송이라오..

하나님을 부르는 그들과.. 하느님을 부르는 우리..

올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간다면..

모두가 그리스도의 향을 풍기는 꽃송이가 아닐까요..?

 

아마.. 하나님은 하느님의 별명인 것 같습니다.

 

 

p/s

다음번 게시물은.. [타종교 체험(2) 네비게이토를 만나보셨습니까?] 가 이어집니다..

연재시리즈물.. 기대해 주세용..

 

 

 



64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