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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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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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2-28 ㅣ No.5748

 

 

전세값이 오를 때면 우리 가족은 한 보따리 짐을 들고 이사를 간다.

매번 이사를 갈 때마다 마구(?) 세를 올려대는 집주인에 화도 나고 또 겨우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동쪽에서 화난 것을 서쪽에서 푼다고 괜히 뒤따라 이사 오는 가정에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불친절하기도 했다.

 

나의 이런 못난 마음은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할 때 바뀌게 되었다.빈집의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당은 의외로 비질이 깨끗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방마다 문창호지가 한군데도 찢어진 곳이 없이 산뜻하게 되발라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화로에 잘 담아 가지고 온 뻘겋게 핀 연탄을 집게로 꺼내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부엌도 마찬가지로 거미줄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는데 종이 한 장이 눈에 잘 띄게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이사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 오셔서 행복한 가정 이루시고 부자 되세요. 방마다 연탄불을 피워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씩이면 진종일 따뜻합니다. 연탄가스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를 갑니다. 혹시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그 글을 보는 순간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떠나온 신설동집을 제대로 분리수거도 안하고 방바닥도 신발자욱으로 얼룩져 놓지 않았는가?

생각할수록 내가 이토록 부끄러운 존재로 살아왔음이 창피했다. 어떤 깨우침 하나가 가슴을 울렸다.

 

 

- 낮은 울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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