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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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111/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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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9-25 ㅣ No.4697

 

                사제관 일기 111  

 

 

한 분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몇 해를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셨다던 자매님이십니다.

오래도록 살아주길 바랬건만, 끝내 가시고야 말았습니다.

 

떠나시기 며칠 전,

교우들의 방문을 받고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그 모습이 가엾고 안쓰러워

이제 그만 미련을 접고 가시라는 말씀을 했다 합니다.

그리고, 꼭 이틀 후에 그렇게 세상을 뜨셨습니다.

....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무슨 사연이나 되었을까,  

목숨의 연줄을 갑자기 놓아버린 연유가 궁금했습니다.

결국은 갈 것을 그토록 오래간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알 수 없는 까닭 앞에 자꾸만 물음이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

오늘,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는 유족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분이 미련으로 버텨온 까닭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적인 정리(情理)를 쉬이 거둘 수 없었던 까닭에서였습니다.

가족에 대한 처절한 그리움이 그의 목숨을 마지막까지 붙들어두었던 것입니다.

...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잠시간 제 처지를 헤아려봅니다.

처자도 없이 홀로의 인생이거늘,

숨져죽는다면, 누가 있어 울음 섞인 눈물 한 자락에 미련을 둘 것인가.....

허무하고 헛된 인생이여.......

무상이여....덧없음이여.....

눈부시고 화려한 삶도 결국엔 한 평 공간으로 밀려나건만,

무슨 미련이 더 남아 생에 이토록 집착하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삶의 비애감을 절절이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오늘 이 밤은,

죽음을 더 깊이 생각하는 밤이고 싶습니다.

남의 죽음이 아닌,

바로 저의 장례를 여겨보는 밤이고 싶습니다.

 

언제고 한번은 가야할 삶이고,

저의 순번도 그리 오래지 않았음을 헤아려봅니다.

오늘은 당신의 차례지만,

어쩌면 내일은 제 차례일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생의 마지막처럼 귀히 여기며 살겠습니다.

 

어느 글귀에서처럼,

오늘의 이 하루는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갈망했던 그 하루임을 기억하며,

오늘을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하루를 당신의 하루로 삼고, 제가 대신 채워나가겠습니다.

.......

죽음 앞에만 서면 항시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는데,

오늘밤은 유난히 삶보다 죽음이 가깝습니다.

동네 마실을 다녀가듯 잠시 왔다 가는 인생살이거늘

과연 나그네 길손으로서의 삶에 충실한지를 되물으며,

죽음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연습을 계속하겠습니다.

하여, 오늘밤도 자연의 순리에 보다 정직한 목숨으로

그렇게 자신을 비우며 지워가겠습니다....   

 

 

                                                  괌한인성당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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