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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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을 지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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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07-15 ㅣ No.4107

마음의 눈을 지닌 사람

 

약 2주일 전, 세입자 "솔"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비가 온 후 방바닥에 빗물이 고인다는 전갈이었다.

솔이 네는 8년 전에 건축한 다세대 주택 2층으로 작년 봄, 의정부에서 이사왔다.

우리 내외는 솔이네가 이사 오기 전, 목욕시설을 수리해 주고, 안 방을 예쁜 색깔의 벽지로 도배해주었다. 솔이 엄마는 마치 신혼 방 같다며 좋아하였다.

방바닥에 물에 고이기 전까지는, 그 후 솔이 가족은 1년 이상을 아무런 불편도 없이 그 집에서 생활해왔다.    

 

부연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작년 5월  아주 작은 다세대 주택의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세입자인 솔이 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아들 "솔"이만을 데리고 복덕방에 나타났다.

솔이 아빠는 직장 일로 틈을 낼 수 없어 솔이 엄마만 나왔다고, 솔이 엄마는 말했다.

전세 계약을 작성하고 계약금을 치른 후에야, 솔이 엄마는 솔이 아빠가 시각장애자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전세 계약 전, 만약 솔이 아빠가 시각장애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전세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까봐 나에게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었다. 솔이의 아빠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솔이네 가족은 그러한 슬프고 괴로운 경우를 여러 번 체험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솔이 엄마의 얘기를 듣고도, 솔이 엄마가 정직하지 않았다는 생각보다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히려 나는 솔이 엄마가 사회나 이웃에서 받은 상처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나는 사회가 비정하다거나,장애인을 위한 나라의 정책이 미비하다는 그런 생각보다는 장애인이나 그 가족을 대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도 되었다.내가 만약 계약 전 그 사실을 알았더라도, 남편이 시각장애자라는 이유나, 그러한 편견 때문에 솔이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자인 남편을 모시고, 아들을 키우고 또  보험회사에 다니는 솔이 엄마의 내면적인 모습은 내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새겨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겠다는 심정으로 솔이 네가 이사오기 전, 보통 사람이면 사용할 수 있는 목욕시설을 편리하게 고쳐주고,  안방의 도배도 해주었다.

 

나는 솔이 엄마의 전화를 받은 후, 바로 솔이네 집으로 갔다.,

유리 창가의 안방 장판 위에는 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다.

장판을 들쳐보아도 아무런 물기의 흔적도 없었고, 천장의 도배지에도 물기가 벤 얼룩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창 옆 벽지에는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의 가녀린 얼룩이 있었다.

집밖으로 나가 그 벽면의 위치와 동일한 외벽을 살펴보았다.

붉은 외벽이 2층에서 3층까지 금이 가 있었다.

나는 바로 수리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여, 집수리를 부탁하였다.

집수리를 약속한 목수는 세 번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비만 내리면 솔이네 가족은 물이 흥건히 고인 장판 위에서 불편을 겪어야 하였다.

그래서 우리 본당의 형제님에게 부탁하였더니, 바로 그 날 외벽을 수리하고, 방수처리까지 해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어제저녁 솔이 엄마가 다시 알려 왔다.

방바닥에 또 빗물이 다시 고이기 시작한다는 전갈이었다.

어제 저녁 토요특전미사가 끝난 후, 집수리를 하셨던 형제님과 나는 솔이네 집을 방문하였다. 내벽을 타고 내린 빗물은 방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내벽누수(內壁漏水)의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집수리를 하실 형제 님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응접실에는 "솔"이 아빠가 있었다. 어제 저녁 나는 솔이 아빠를 처음 보았다.

시각장애자인 그가 집수리를 하실 형제님에게 말했다.

"혹시 벽의 커다란 못 자국이 내벽의 물 내리는 프라스틱 홈통을 뚫어 놓은 게 아닐까요?"

라고 말하였다.

집수리가 직업인 형제님도 옥상에 올라가 보더니, 옥상으로부터 내벽을 타고 내려간 프라스틱 홈통이 빗물이 세는 그 곳으로 통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솔"이 아빠가 지적한 것과 같이, 누수의 원인을 찾아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시각장애자인 "솔" 이 아빠를 통하여,  아주 평범한 사실을 깨우쳤다.

생업이 집수리인 형제 님이나,두 눈이 멀쩡한 내가 발견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집의 결함을 마음의 눈으로 지적해 준 솔이 아빠의 마음의 눈에 단지 감탄할 뿐이었다.  

그리고 육신의  눈은 마음의 눈이 감겨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육신의 눈 으로 사물을 볼 수 없을 때는 , 영혼의 눈으로 사물을 관조할 수 있는 또 다른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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