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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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86/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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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7-05 ㅣ No.4022

 

            사제관 일기 86  

 

피에스타(FIESTA) 준비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본당 주보성인 축일에 갖는 일종의 페스티벌이라는데, 저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주일날, 대주교님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해 주실 테고,

이후에는 바비큐를 곁들인 자축파티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오시는 자리라,

준비과정도 꼼꼼히 점검해야 하고, 손님맞이도 서둘러야 합니다.  

이미 교구신부님들께도 초청장을 다 보내드렸고,관할 동장까지 초청을 했습니다

일을 저질러놓고 보니, 괜한 객기를 부린 건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말많은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부풀려 놓기만 했을 뿐, 실속 없는 행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

사실, 이번처럼 복잡한 행사는 딱 질색입니다.

원래가 행정이나 사무에는 능하지 못한 편이라,

이따금씩 큰 행사가 닥치게 되면, 항상 애를 먹곤 합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손 하나가 아쉬운 게 현실이라, 어려움이 더 많습니다.

...........  

어쩌면, 그 동안은 참 편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입만 열면 알아서 척척 해결이 되었는데,  

이곳서는 남의 손도 빌릴 수 없고, 꼭 제 손이 먼저 닿아야만 합니다.

수녀님도 없고, 사무장도 없고, 관리인도 없는 성당,

저는 그 곳의 주임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씩은 힘에 부칠 때도 있습니다.

매일의 전례를 점검하면서 빠트린 건 없는지 수시로 확인도 해야 합니다.

문서조차 만들지 못하는 컴맹이라,겨우 하나 붙들고도 하루를 허비합니다

데이빗이 해오던 바깥 일거리도 만만찮아, 청소 한번으로 반나절이 후딱 지나버립니다.

 

편하게 지낼 때는 모르다 불편이 하나 둘 생기니까, 그제야 뒤가 보이게 됩니다

그 동안은, 가만히 누워, 주는 떡만 받아먹어 왔는데,

이제는 찾아 먹으려니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타성에 젖는다 함이 무섭다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있는 자리, 당연한 역할로만 여겨왔을 뿐,   

그당연함을 누군가의 노력 끝에 얻어진 소중한 결과로는 보지못했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름다운 건 누군가의 숨은 희생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이제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 자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 소중한 분들.....

소홀했던 감사를 사죄하며, 새로이 당신들 앞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의 바쁨을 편하게 산 데 대한 보속으로 삼고, 불평도 없애겠습니다

................

누워서 먹던 떡 맛을 하루 빨리 잊어야겠습니다.

그 떡 맛만 보다가는 지금의 떡에는 도통 손을 못 댈 것 같으니 말입니다.

제자리가 누워 떡 먹기의 자리보다는 더 험하고 거친 자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더 부지런한 모습의 사제로 살아지길 바랄 뿐입니다.

............

수녀님도 없고, 사무장도 없고, 관리인도 없는 성당의 주임신부.

그렇지만, 저는 행복할 겁니다.

하나의 보직도 과분할진대,

세 가지 보직을 덤으로 받은 이 배부름을 감사할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통해 더욱 성숙한 모습의 주임역할을 배워나갈 겁니다  

.........

앞으로 저를 부르실 일이 계시거든,

관리직 신부나 사무장 신부로 부르셔도 괜찮겠습니다.

아니, 그도 아니면 수녀신부라 부르셔도 되겠습니다.

바로 이 이름들이 이곳에서 얻은 저의 보직명임을 밝히며,

여러분 앞에 이 귀한 이름들을 자랑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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