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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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과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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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안 [jachoi] 쪽지 캡슐

2001-03-31 ㅣ No.3180

* * *

늦은 아침을 차리는데 전화가 왔다. 우체국이었다.

"선교사님, 오늘 집에 계세요?"

"점심때쯤 나가는데요. 왜요?"

"아니 소포가 와서…. 그럼 못만나겠네요?"

우리 구역 담당 집배원과 한참 고민을 하다가

상남 나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찾기로 하였다.

’오늘따라 얼마나 무거운 소포가 왔길래 그런담?’

 

초등학교 서상혁 선생님이 반 아이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서둘러 채비를 차려 나갔다.

교무실에 계시던 지은숙 선생님이 반갑게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서 선생님이 아까부터 찾던데요?"

지 선생님이 안내해준 3학년 교실로 갔다.

커다란 교실 앞쪽에 14명의 아이들이 옹기 종기 앉아 있었다.

수학문제를 풀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쏟아졌다.

형은이, 정원이, 상훈이, 석진이, 지인이, 중희, 향숙이,

성자, 미선이, 태욱이, 재우, 유진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서선생님은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수업중인데….

 

미안한 마음으로 교실 뒤 휑한 자리에 가 앉았다.

아이들은 연신 돌아보며 웃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난리가 났다.

’이녀석들이 그렇지 않아도 미안해 죽겠구만.’

손가락 한 개를 입에 갖다 대며 연신 ’쉿!’ 했지만

반가운 내 얼굴은 아이들에게 위압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한마디하셨다.

"선교사님도 오셨는데 우리 아주 어려운 문제로

실력을 보여드리자."

선생님은 재우를 불러내 만자리 빼기 문제를 내셨다.

늠늠하게 설명까지 하며 풀어가는 재우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한마디 하셨다.

"십만자리, 백만자리도 이제 얼마든지 풀어요."

설명이고 뭐고 아까부터 계속 뒤로 돌아앉아

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성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내가 아는 척을 안했던가?’

얼른 활짝 웃으며 나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주었다.

그제야 성자는 웃으며 앞으로 돌아앉았다.

 

선생님은 수학시간을 서둘러 마치고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양팔, 양다리에 한꺼번에 매달리며

반가워했다.

"야, 바지 흘러내릴라!"

아이들을 한 녀석씩 허리를 감싸 메치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박고, 볼을 꼬집어 주며 인사를 나눴다.

남자 9명, 여자 5명의 독사진과 동아리 사진,

반 전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날씨도 좋아 사진 찍는 동안에는 해가 반짝 나왔다.

서 선생님은 아이들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자고 했다.

배식을 하던 엄마들도 모두 아는 분들이었다.

흥석이 엄마, 중훈이 엄마, 태욱이 엄마….

 

교문 앞까지 배웅 나온 재우녀석에게 속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하나 꺼내 주고 우체국으로 갔다.

커다란 라면 박스가 소포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뭐예요?"

"글쎄요, 라면은 아닌 것 같아요."

우체국장님은 박스를 흔들어 보더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개의 일반 우편물과 함께 받아가지고 나왔다.

’무겁지는 않은데…. 뭘까?’

발신인의 이름도 쓰여있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소포부터 뜯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세상에…."

라면 상자 안에서는 예쁜 사탕 목거리가 30개도 넘게

쏟아져 나왔다.

사탕 하나 하나를 예쁜 포장지로 싸서 연결한 사탕 목거리.

색색깔의 리본도 달려 있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눈에는 눈물이 핑돌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탕들 속에서 나온 편지에는 3일동안 걸려서 만들었다는

얘기와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부활절 선물로

나누면 좋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발신인은

’숲 속 천사가’라고 적어 놓았다.

’그래, 천사야. 천사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어.’

놀라움과 기쁨과 또 좋아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사라고 표현해도

굳이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날개를 달지 않았어도, 하늘을 날아다니지는 않더라도

이렇게해서 우리는 천사가 될 수 있는가보다.

학교에서 어린 천사들과의 만남,

또 사탕목거리 안에서 이름모를 천사와의 만남.

오늘은 천사들과 데이트한 날이다.  

<강원도 상남공소 평신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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