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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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os Dias, C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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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희 신부 [lyh1211] 쪽지 캡슐

2001-03-06 ㅣ No.2973

멕시코 한인 천주교회의 첫 봉사활동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지난달 25일 멕시코 한인 천주교회(본당신부 이용희사도요한) 사회봉사단 16명은 교회 설립이래 첫 봉사활동이라는 설렘속에 멕시코시티인근 모렐로스주(州) 오아스테펙(Oaxtepec)의 한 영세민촌에 도착했다.

 

가난에 허덕이는 멕시코의 농촌 마을이 대개 그렇듯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와 붕괴직전의 벽돌담, 슬레이트 또는 비닐로 대충 덮어놓은 지붕, 짓다가 방치해둔 가옥 등이 폐허를 방불케 하는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변변한 장난감도 없이 나무막대기를 들고 맨발로 뛰노는 동네 아이들. 그나마 신발을 얻어 신은 어린이도 새까맣고 너덜너덜한 운동화 천 사이로 발가락이 삐죽 빠져나올 정도여서 측은함이 앞섰다. 순간 6.25전쟁 직후 한국의 상황이 저랬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헐벗고 굶주린 생활의 연속이었던 부모세대의 고생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마을을 얼추 둘러보니 2백여가구 정도가 최저 생계수준을 약간 벗어난 상태에서 간신히 생활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1억 멕시코 인구의 절반 가량이 절대빈곤층이고, 지붕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랄 것 같지 않은 건조한 땅이었기에 마을 주민들이 농사로 생계를 잇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먹거리를 책임져 줄만한 도시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물론 아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침이면 인근의 좀 더 큰 마을로 나가 막노동이나 파출부일, 자동차 유리창 닦기 아니면 구걸을 하면서 하루 30∼40페소(우리돈 3000∼4000원)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어쨌든 외지인, 그것도 한국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난데없이 무료 진료와 두발정리, 집안수리 등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하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마을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기를 들쳐업은 일부 원주민 아낙들은 문틈으로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일까'하는 경계심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인성당의 첫 봉사활동이었던 만큼 봉사단원들의 긴장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이 얼마만큼 협조해 주느냐에 따라 활동의 성과가 있을 터인데 처음부터 경계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더벅머리에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들이 봉사단원들의 뒤를 졸졸 좇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거나 물품을 건드리며 애써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나마 양쪽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마을을 대충 둘러본 봉사요원들은 마땅한 활동장소를 찾지 못하다 오아스테펙의성모영보회소속 수녀원에 진을 쳤다. 마을 성당의 주일미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봉사활동 소식이 약간은 알려진 덕분에 이윽고 주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인기를 끈 봉사활동은 가정의학을 전공한 김종택 원장(예비자)의 진료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한 두 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은 뒤 마을로 돌아가 `괜찮더라'라는 소문을 퍼트렸는지 오후부터는 환자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다행히 큰 병을 앓는 주민은 없었지만 대부분 식수사정과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데서 비롯된 질병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일부 주민은 옹색한 살림형편에 병원을 찾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 치료를 포기한 나머지 병을 더 키운 것으로 나타나 봉사단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부인들은 대개 난소염과 방광염 등의 질환을 가졌고, 노인들은 루머티스나 위장병, 당뇨합병증을, 어린이들은 감기와 설사 등의 증세를 보였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정신박약아와 간질환자가 가족과 함께 찾아와 진료를 호소했으나 위로의 말 밖에 해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의 국립 부에노스아이레스의대를 졸업한 뒤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등에서 개업의 생활을 하다 최근 멕시코에 이민온 김원장은 평일엔 하루평균 3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하지만 이날 만큼은 쉴 틈도 없이 76명의 환자를 돌봐야 했다.

 

인술(仁術)을 실천하는 멕시코 `히포크라테스 그룹' 소속 의사인 그는 자비로 마련한 3천페소(우리돈 33만원 가량) 어치의 약품을 환자들에게 무료처방해줘 단원 가운데 `그라시아스'(고맙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미용사들의 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간이천막에 나무의자를 설치해 마련한 `즉석 이발소'에는 동네 할아버지와 아저씨, 꼬마 친구들이 주고객이었다. 더벅머리를 걷어내고 무스까지 발라 말끔한 모습이 된 안토니오 카를로스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한 10년은 더 젊게 보이는데 새 장가를 가도 되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인성당의 봉사활동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에 나선 멕시코인 미용사들이 머리를 다듬는 동안 7살짜리 페르난데스군이 멀찌감치서 계속 천막안의 동정만 살핀 채 좀처럼 들어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숫기가 적었던 녀석은 여지없이 맨발에 더벅머리였으나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미용사들의 권유에도 손가락만 사탕인 양 빨고 있었다. 자신의 모양새와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틀림없이 다른데가 있는 한국인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영 미덥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회복지분과장인 김만수 다니엘 형제가 가져간 양말을 손에 쥐어주며 구슬렸더니 이내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 손을 잡고 다시 나왔다. 봉사단원들은 "녀석이 어머니의 `입회' 아래 머리를 다듬을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으나 어머니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끝내 봉사단원들을 `낯선 이방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허둥지둥 점심을 떼우고 각자가 맡은 봉사업무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처음 대했을 때의 두려움과 서먹서먹함이 사라진 주민들은 헤어지기가 몹시 섭섭한 듯 `그라시아스'를 연발하고, 봉사단원들에게 일일이 `움 베소'(서로 껴안고 뺨을 대면서 살짝 부딪히는 멕시코식 인사)를 베풀었다. 어떤 노인은 봉사요원의 손을 한참이나 붙잡고 아무 말도 않더니 급기야 메마른 눈자위에 눈물을 보였다.

 

상기된 표정의 봉사단원 가운데도 측은함과 안쓰러움, 섭섭함 등이 겹쳤던지 슬그머니 고개를 떨구는 사람도 보였다. 화려한 수식어가 필요없이 봉사단원과 주민들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베풀었는데도 그토록 고마워하고 감격해 하는 저들을 보고봉사단원들을 평소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나눔의 실천'이 이토록 소중하다는 것을 깊숙이 깨달았다. 오아스테펙 마을의 이장이 동네 어귀까지 배웅하면서 "너무 고맙다. 우리도 한국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할 때도 고단한 이민생활이지만 시간을 할애해서 불우한 이웃과 잠시라도 가까이 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를 절감케 했다.

 

이날 업무차 수녀원을 방문했던 멕시코시티의 한 주민은 봉사장면을 지켜본 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줄 몰랐다"며 멕시코를 상징하는 레몬 묘목 한 그루를 봉사단원들에게 선사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레몬나무처럼 싱싱한 향을 잃지않는 사람들이 돼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귀로에 봉사단은 몸은 피곤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하고 평안한 기분을 누릴수 있었다. 바쁘고 고된 일상의 연속이지만 매월 한 번씩 오지의 마을을 찾아 우리의 예수님들을 상대로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정신의 삶을 살찌운다는 사실도 깨달으면서 말이다. (성기준 임마누엘)

 

도움을 주실 분들 연락처) 한빛은행 454-027730-02-001

 

예금주: 멕시코 한인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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