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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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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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28 ㅣ No.172799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마르 10,28-31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제가 범한 모든 죄를 전능하신 하느님과 신자분들께 고백합니다. 사제생활 한지 25년 되었습니다. 사제로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은 점점 작아지시고 저는 자꾸 커져만 갑니다. 더불어 고해소에서 제가 내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갑니다. 예전에는 존경했던 선배 신부님들이 '일'로 부딪히다보니 지금은 비난의 대상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신경써서 사목하는 대상이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나를 알아주고 대우해주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로 옮겨갑니다.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으면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가장 좋은 가운데 자리에 먼저 가서 앉습니다. 어르신들이 무릎을 꿇고 술을 주셔도 이제는 앉아서 잔을 받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을 만나뵈러 가정 방문을 갔는데, 이제는 제가 예수님이 되어 가정방문을 다닙니다. 칭찬과 감사, 격려의 말보다는 불평과 비난, 지시의 말이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시간보다 제가 말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집니다. 신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무조건 내 말이 맞고 나의 판단이 옳다고 우길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하루라도 기도를 빼먹으면 큰일나는 줄로 알았는데, 지금은 기도를 안해도 되는 이유가 자꾸 늘어납니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모두 용서하여주십시오."

 

 올해로 사제서품 받으신 지 25년이 되는 어느 선배 신부님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고해성사의 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입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지금 사제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많은 항목이 저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제로서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지금 제가 사는 모습을 보면 주님께서는 제가 버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채워주신 것 같습니다. 2년간 빌려쓰는 신세이긴 하지만 혼자 쓰기에 차고 넘칠 정도로 넓은 집이 있고, 사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가재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를 가족처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수많은 명일동 성당의 신자분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부모님도 되어주시고 형제도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풍족하게 누리고 있으면서도 감사하며 살지 못한다면, 버리고 포기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과한 욕심일 것이고, 그런 욕심을 부렸다가는 나중에 하느님께 혼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눈 앞에서 바라보는 영광과 행복을 누리고 있음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가족과 재산을 포함한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따름'과 보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뜻을 더 잘 따르고,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자신이 버린 것보다 수백배나 더 귀하고 가치있는 것들을 상급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급이 주어지는 방식이 좀 특별합니다. 성과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인간 사회의 방식이 아니라,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하느님 나라의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은 내 삶의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할 뿐, 나머지 90퍼센트는 여전히 우리 손에 있습니다. 또한 포기한 그 10퍼센트 마저도 수백배의 은총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는 하느님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꼴찌'의 모습이더라도 불평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면, 지금 부족한 부분은 주님께서 훨씬 더 크고 소중한 것들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또한 당신 나라에서는 우리를 '첫째'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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