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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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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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1-24 ㅣ No.5540

아름다운 동반자

 

 

사회자의 인사말이 끝나고 신랑이 입장했다. 그리고 신부 입장을 알리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술렁거리던 식장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신부가 들어올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고개 숙인 신부가 보였다. 다리가 불편한 신부는 아버지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왔다.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느리게 연주되는 피아노 반주에도 신부는 발을 맞추지 못했다. 쓰러질 듯 한 쪽 발을 내딛고는 서둘러 다른 한발을 내딛다가 신부는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식장 안은 술렁거렸다. 신부를 일으켜 세우는 신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주례를 향해 뒤돌아섰다. 태환은 그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신랑이 자신의 한 쪽 발을 신부의 웨딩드레스 밑으로 살며시 넣고는 신부의 짧은 왼쪽 발을 자신의 발등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었다. 신랑은 중심을 잡으려고 신부보다 더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몇 달 후 태환은 그 친구 집에 갔다. 친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대문은 빨갛게 녹슬어 있었다. 그는 친구를 따라 분꽃이 활짝 핀 마당을 지나갔다. 그리고 좁은 통로를 꽃게처럼 옆으로 걸어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친구의  아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 사열하는 호위병처럼 벽면에 줄지어 서 있었다.

 

결혼 사진 속의 신랑신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예복은 몹시 초라했다. 결혼식 날 신랑은 낡은 양복에 뒤축이 다 닳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신부가 입고 있던 빛 바랜 웨딩드레스도 사진관에서 값싸게 빌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절약한 결혼비용과 축의금 일부를 고아원과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의 개안 수술비로 보냈다. 그들의 도움으로 한 아이의 엄마가 개안 수술을 받았다. 앞 못 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지하철에서 바구니를 들고 다니던 어린 딸에게 이제는 엄마가 희망이 돼줄 수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준비해준 저녁을 먹으며 태환과 친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태환은 무심코 방안을 둘러보다 조그만 액자 속에 분홍색 종이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친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였다.

 

 

’늘 기쁨으로 당신의 한 쪽 다리가 되겠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당신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차라리 내 다리를 절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태환은 꽃향기로 가득 찬 친구의 방을 나왔다. 친구와 함께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올 때, 벽에서 시멘트 가루가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면 이 통로가 좁아서 걱정이야."

슬픔 가득한 목소리로 친구가 말했다. 태환은 말없이 친구를 위로하고 달빛 쏟아지는 언덕을 내려왔다. 그 날따라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힘들 수도 있고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찾기가 쉽다.

 

 

- 연탄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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