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3일 (목)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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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에 감싸여(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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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nica] 쪽지 캡슐

2001-12-31 ㅣ No.5371

 

 

그 빛에 감싸여

 

베티 이디(Betty J. Eadie) 지음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그 옛날 내가 체험한

특별한 체험에 이러한 전문용어가 있다는 사실부터 놀라왔고

책 첫장을 넘길 때마다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단 숨에

한권의 책을 다 읽었다.

내 체험이 그렇듯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단순한 꿈이나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

그 묘사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생생했다. 단 그녀의 체험은

나의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아마 그녀가 나보다 더

감수성과 기억력이 예민한 탓이리라.

그녀와 내 체험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특히 하늘나라의 신비와 그곳에서 만난 존재들의 완벽한

의사 소통방식....

세상과 인간 삶에 대한 진실.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

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존재의 주인이신 하느님.

그 인자하심과 따뜻함.

 

아니 하나하나 다시 짚어보자..

그녀가 표현한 수사와 같은 존재. 내게도 있었다 긴옷을 입은 남자.

내 경우엔 한 명이었고 그는 검은 옷을 입고 내게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내가 죽었음을 알려주었고 나는 누워있는 내 육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잠들어 있는 내 어머니도 보았다. 가난과 힘든 삶의 노동에

지쳐 가볍게 코를 골며 누워있는 한 여인을. 그는 딸이 죽은 지도 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내게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제사 지낼 때처럼 큰 절을 했다. 어머니는 내가 아프다며 아궁이

연탄 불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에 겨울이었지만 방바닥은 따뜻했다.

그 뜨거운 방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나는 어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그건 땀 냄새같기도 했고 피 냄새 같기도 한 비릿한 인간의 냄새였다.

나는 한 여인의 자궁을 통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녀는 누가 뭐래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통로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세상에 왔다. 지상의 어머니가 딸에게 받을 수 있는 행복을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불효에 나는 흐느껴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재촉했고 나는 그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는 봄날 나비같이 자유롭고 따뜻했으면 내가 이 세상에서 접한 적이

없는 더할 수 없이 인격적이고 조화로운 존재였다. 내가 그에게 경도되어

그를 찬미했을 때 그는 내게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에 대해

말해주었다.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고귀한 분, 온 세상의 주인이신 분,

전지 전능, 전선하시고 절대적인 분이 계시다는 걸...... 자신은 그분의

메신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토록 높으신

분이 하잘 것 없는 나를 나 자신 보다 더 속속들이 알고 있고, 나 자신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나를 몹시 만나 보고 싶어하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은 내 생애 최고의 기쁜 소식이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누구를 그토록 사랑해본 적도 없으며

그토록 사랑받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토록 위대하신 분이

하잘 것 없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소식은 내 영혼은 몹시 설레게 하였다.

그분은 바로 내 영혼의 주인이심을 나는 담박에 알았다.

나는 그 순간 이후 그분을 뵙고자 하는 무서운 갈망으로 치달았다.

 

그(검은 옷의 메신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최상의 수업시간이었다.

모든 세상의 비밀이 풀려지고 의혹이 사라졌다. 지금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진리의 핵심에 있었음을. 인간과 삶과 죽음...

그 근원적인 목적... 나는 아무런 장막 없이 진리의 그 풍요롭고 평화로운

바다에 둥둥 부유하는 행복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삶의 유형들이 한 신비롭고 생소한 둥글고 큰 원형 구슬

속에 나타났다. 수많은 학자와 수도승, 사업가, 건축가, 과학자, 그들은 수없이

많은 호기심으로 세상의 비밀을 탐구하였으며 무수한 탑을 쌓고 무너뜨리곤 했다.

그러나 진리의 핵심에 도달한 자는 하느님의 얼굴을 본 자일 뿐이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바로 하느님, 하느님이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제 그 하느님께 도달하려고 하고 있었다.

나의 죽음은 행운이었고 나는 그 행운에 선택된 자였다.

 

그리고 베티가 표현한 대로의 어둠이 있었다.

그녀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 체험은 내 체험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마치 거대한 회오리 바람에 먹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렬하고, 거의 만져질 듯한 암흑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빛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어둠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깊디깊은 암흑이었다. .... 암흑덩어리.

내 몸이 그 속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고 소용돌이치는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 나는 빛의 속도로도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그 깊은 어둠 속을 지나갔다. ......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줄기 아주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나를 감싸고 있는 흑암의 덩어리는

점차 터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내가 한층 빠른 속도로 그것을 통과하여

그 빛을 향해 돌진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에 접근하면서 나는 그 빛 속에

누군가가 서있는 모습을 보았는데(내 경우엔 앉아있는 모습) .....

그의 온 몸은 마치 황금빛 후광을 두루기라도 한 것 처럼 그를 둘러싼

주변의 빛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빛이 그의 주변으로부터

퍼져 나와서 찬란하고 장려한 흰빛으로 퍼져 멀리에까지 뻗쳐있는 것이 보였다.’  

 

베티의 말 대로 그 분에게선 빛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나는 불행히도 그분의

얼굴을 정면에선 볼 순 없었다.

대신 나는 그분의 옆모습과 흰 옷을 보았다. 흰 색의 옷이 그렇게 따듯하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성스럽고 순결한 옷... 사람을 온통 빨려들어가게 할 것 같은 매혹적인 감미로움이

그 옷 전체에서 배어있었다. 그것은 지고의 평화요, 지고의 안식이었다.

그토록 좋으신 분...

그분은 내 영혼과 육신을 송두리 채 사로잡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오래 헤어져

있었던 육친을 멀리서 뵌 기억이 있다. 그 때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설레임, 그리고 부끄러움, 그보다 더 강렬하고 집결된 그리움이랄까? 아픔이랄까?

온갖 끈끈한 감정들이 용해된 듯한 액체가 내 영혼에 잠겨왔다.

 

나는 그 옷자락에 뛰어들고픈 충동을 참혹한 인내로 참아야 했다.

그분에게는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아, 그리고 그분의 손. 아름답고 투명한 두 손이 음악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어루만지듯이. 그분은 온 정성을 다하여 무엇인가를 빚고 있었다.

그분이 그 작업에 얼마나 몰두하고 계신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손놀림을 숨막히는 기대감으로 바라보듯 만상이 숨을 죽이고

그분의 손놀림을 주시하듯 사방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분 전체에서 풍겨나는 경쾌함과 즐거움, 창조력은 희망에 가득찬

그 무엇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상태를 견딜 수 없었다. 그분을 감싸지 않은

나의 곳은 몹시 추웠으며 어두웠고 온 영혼이 그분을 향해 달음질 치고 있었다.

나는 숨막히는 갈증으로 그분의 품에 뛰어들고픈 욕망으로 똘똘 뭉친

철부지 아이일 뿐이었다. 오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가 엄마를 만났을 때의

서러움과 광포함이 내게 있었다. 그러나 나를 안내한 그 사람은 나를 엄격히

제지시켰고 다만 기도하고 있으라 했다. 나는 그분에게 달려가고픈 욕망을 한 데 모아

전심전력으로 기도에 열중했다. 두손을 합장하고 목숨을 다하여 기도했다.

한참후 내가 눈을 떴을 때 무척 어둡고 고통스런 얼굴을 한 검은 옷의

모습이 있었고...  그분은, 아, 그분은 여전히 침묵 중에 계셨다.

 

검은 옷의 사람이 슬픈 눈빛으로 내게 말한 것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은 그분의 명령이라는 것.

자기도 마음이 몹시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

내겐 지상에서의 사명이 있다는 것, 힘들겠지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겠다는 것. 언제고 우리가 너를 지켜주겠노라는....

 

그러나 그 모든 약속도 나의 슬픔과 절망을 위로할 수 없었다.

 

싫어요.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럴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다시 나를 이 절망 가운데 버려두지 마십시오.

이건 너무 지독해요. 춥고 더럽고 고통 뿐인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순 없어요.

나는 지쳤고 충분히 고통을 겪었어요. 이젠 당신이 필요해요.

나를 안아주세요. 그 따뜻한 품에, 당신의 아기를...

그 춥고 더럽고 모욕의 세상에 다시 돌아갈 순 없어요.

더 이상은 안되요.

 

나는 무섭게 포악을 떨며 소리를 질렀으나

19살의 내가 깨어난 곳은 우리 방이었고 어머니는 빳빳하게

굳은 내 몸을 흔들어 깨웠고 나는 앙-하고 갓난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깨어났다.

그후 나는 병원으로 실려갔고 퇴원 후에도 약 한 달 동안

집에서 요양하며 지내야 했다. 의사는 내게 극도의 피로와 영양실조로

인한 신경쇠약증세 라고 했다. 식구들은 모두 내게 잘해주었고

나는 생전 없던 익살마저 떨었다. 모처럼 우리 집에 웃음과 대화,

훈훈한 사랑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내가 그 체험을 통해 배운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 만은 확실했다.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고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그 사랑 안에 있으며

우리의 영혼은 그분의 것이라는 것....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밖으로 나와 바람부는

동네 산 언덕배기에 마주섰다. 맞은 편엔 거대한 산동네가 펼쳐져 있었다.

즐비한 판자촌에선 늘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시궁창 물이 늘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은 거기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메곤 했다. 여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게 악을 쓰고 남편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욕을 했다.

평소엔 19살 여학생이 감히 마주 보지 못했던 곳, 웬지 모를 두려움으로

애써 외면하며 종종걸음으로 피해가던 그곳을, 그날 나는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 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람 결에 눈물 한 방울이 핑 날아갔다.

누구에랄 것도 없이 알지 못하는 적에 대한 전투의지를 불태우며

나는 맹렬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날 다시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이제 다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오래 전의 일이니까...

베티의 책은 내게 망각 속에 지나온 일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그 후로 나는 천주교에 입교했고

나는 늘 무엇인가와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그게 내 사명이었을까? 싸움이?

 

내가 가서 안겨야 할 그분의 품..

그 포근한 쉼.... 내 상처 투성이의 육신을

받아줄 그분의 품.... 아아 내가 그 때 부르지 못한 이름,

안타까운 이름, 예수님.

그 이름을 부를 줄 알았으면, 그 이름을 알았었더라면

이렇게 다시 여기 오지도 않았을 것을.....

오래 여기서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영글지 못한 내 영혼은 그 때 그분을 보고도 그 분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때 내가 그분의 이름을 불렀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 거라고.

그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실감과 슬픔....

그건 오랫동안 아니, 죽는 날까지 내 삶을 휩싸고 도는

아득한 그리움의 정체이면서도 이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자꾸 헛도는 나의 영혼의 아픔일 것이다.

 

귀양살이

벌받는 자의 지루함

아파도 아프다 소리 조차 지르지 못한다.

아픈 것이 당연하다. 아파야 한다.

이승에서의 모든 것은 벌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희망은 귀양살이 끝날 때에 우리 주 예수님

얼굴을 다시 뵈옵는 것일 뿐...

그러나 주여, 그게 언제입니까?

혹시 너무 길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이제 다시 가면 나는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그 품에 안길 수 있을까?

아,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나의 미욱함이여.

 

주님, 저를 꼭 기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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