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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사나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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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관 [gabie] 쪽지 캡슐

2002-07-26 ㅣ No.36572

딱한 사나이들의 저녁 식사...

 

 

여기 우리 성당의 주간 평일 미사 중 화요일이나 목요일의 저녁 미사에 참석하는 교우 분들 가운데 단골로 참석하는 남성 신자 한 분이 있습니다. 아침 미사든 저녁 미사든 평일 미사에 오시는 교우 분들은 평균 3∼5명인데, 그 중에서 화요일이나 목요일의 저녁 미사의 단골 참석 신자로 C형제님은 특별한 분입니다.

그 C형제님은 이곳 시골 태생으로 이제 50대 후반이 되기까지 이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분입니다. 슬하에 1남 2녀의 자녀를 둔 가장인데, 그 3명의 자녀들은 도시에 나가서 직장 생활하고 있고 부인과 둘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성실하게 지으면서 금실 좋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일요일)이면 그 부부는 따로따로 주일 보러 집을 나섭니다. C형제님은 성당으로, 그 부인(세례명 : 유리안나)은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으로 갑니다. 주간 화요일 또는 목요일에도 저녁 때 따로따로 성당과 왕국회관에 갑니다.

지난 해 여름, 제가 이곳 작은 본당 설립 차 와서 첫해의 여름, 그 C형제님께서 주일미사 후 곧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사제관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저에게 점심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자취 생활하는 저는 사제관에서 후딱 찬밥 떠먹고 N공소의 오후 미사를 봉헌하러 가야하겠기에 안 된다고 거절했지요. 그러자 그 C형제님이 "신부님이나 저나 점심 혼자 먹어야 하잖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왕국회관 가서 오후 늦게 오기 때문에 C형제님은 집에 가봐야 점심을 혼자 먹게 된다는 사연을 그래서 그 때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화요일이나 목요일의 평일 저녁 미사를 봉헌한 다음에는 그 C형제님과 저 사이에는 가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녁 식사  하러 가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넬 때가 많습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 그 형제님의 부인도 여호와의 증인 예배하러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미사 후에는 그 C형제님과 또 다른 형제님까지 셋이서 나가 가까운 음식점에서 삼겹살 구이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 또 다른 형제님은 몇 달 전에 인천에서 이곳의 N공소에 오셔서 살기 시작한 S라는 분입니다. 몸이 불편하여 도시에서 살 수 없다면서 공기 좋은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머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N공소 강당의 뒷방에 머물며 혼자 기도하고 교우들 댁에 도울 일 있으면 간간이 도우면서 지내는 분입니다. 인천에 자기 부인과 자녀들이 있는데 그렇게 혼자 와서 지내는 것이 좀 이상하다 싶은 분입니다만, 몇 달 지나오면서 공소 신자들께 도움되는 일을 많이 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공소의 신자들이 수십 년 동안 공소 관습에 젖어서 미사 전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S형제님께서 틈틈이 가르쳐 준 덕분에 미사 전례에 꽤 능동적으로 참례하는 분들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S형제님께서는 공소 신자들 가운데 냉담 중이신 분들을 찾아다니며 권유하셔서 몇 명의 냉담 회두 실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S형제님은 미사 전에 성당에 거의 한 시간 정도 일찍 와서 혼자 기도를 하곤 합니다. 사제인 제가 보더라도 저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저는 그분 기도하는 걸 목격할 때 마음이 찔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기가 기도하면서 무슨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잘 들어주신다고 힘주어 말하곤 합니다.

그 S형제님이 어제 저녁 미사에 참례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 C형제 그리고 S형제와 함께 저녁 식사하러 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 형제님과 함께 음식점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대강 적어봅니다.

제가 C형제님에게 S형제님을 소개하면서 서로 알고 지내라 권유하고서 S형제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C형제의 부인을 한 번 찾아가 보세요. 가서 성당 나오라고 권유를 좀 해보시지요. 나는 그 부인에게 성당 나오라는 권유를 못하겠습디다. 저는 자신이 없어요."

그러자 S형제님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신부님 명령인데 거역할 수 없지요. 신부님 명령을 전하면 그 자매님 꼭 성당에 나오실 겁니다."

"그 자매님은 신부 명령이라면 더욱 듣지 않지요!"

저의 그 대답에 S형제님은 놀라는 표정으로 "아니! 저는 신부님 명령을 전달해서 거절 당해본 일이 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형제님, 이 C형제한테 물어보세요. 그 자매가 어떠한 분인지…" 하고 말하면서 흘끔 C형제님을 바라보니 짐짓 곤란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러간 다음에 제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S형제님, 이 C형제의 부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거든요. 우리 천주교에서 세례 받고 C형제와 혼인 성사도 한 분인데 자기가 처녀 때부터 다니던 여호와의 증인으로 되돌아갔답니다."

그러자 C형제님이 토를 달았습니다. "처녀 때부터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거기 다녔대유!"

"그럼 왜 천주교 세례를 받고 혼인 성사했나요?" 이렇게 S형제님이 묻자 C형제 대답이 "그건 하느님과 약속한 것이지 나하고 약속 한 것이 아니라고 그 사람이 그래유." 하는 겁니다.

"아니! 그럼 하느님과 한 약속이 더 큰 문제지요!" 이렇게 S형제님이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자 C형제님의 자조 섞인 대답이 우리의 대화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였습니다.

"그걸 제가 모르남유!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말고는 다른 사람들 말하는 것이 틀렸다는 거예유."

"그럼, 주일 날 형제님은 성당 나오고 그 자매님은 왕국회관 가면서 형제님에게 뭐라고 야단하지 않아요?" 이렇게 S형제님이 되묻자 C형제님은 더욱 쓸쓸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그러게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맘 고생 혔겄슈! 그렇지만 지금은 서로 그런 문제로 말허지 않어유. 서로 내버려두기로 한 거쥬. 애들도 죄다 지 엄마 따라서 거기로 나가유."

그러자 제가 치고 들어가 질문을 했지요. "아니! C형제님은 그 동안 뭘 했오? 형제님은 애들과 함께 왜 성당에 나오지 않았단 말요?"

그러자 C 형제님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겁니다.

"지가 안 그랬남유? 여기 공소 때 본당 성당에도 같이 가고 여기 공소에도 같이 나오고 그랬쥬. 그런디 걔들은 왕국회관에 지 엄마 따라서 가기도 허고 그러더니 거기로 다 빠져버렸슈. 본당 성당 가서 지네들 친구도 없고 공소에서도 친구 없고 재미도 없고, 공소에서는 공소예절로 읽기나 허고 뭐 재미 붙일 것도 없었잖어유. 아들애가 커서 대학 다니다가 군대 갔는디 입대허구서 보름만인가 부모보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지가 짐작으로는 여호와의 증인은 집총 거부해서 영창 간다고 하더니 그렇게 됐더라구요. 가서 보니 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3년 동안 교도소 지내고 나왔슈…!"

제가 책임 추궁처럼 질문했다가 C형제의 눈시울이 젖어들면서 항변처럼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대답을 들으면서 저와 S형제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C형제님은 삼겹살 구이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놓았다 하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금은 부부 사이에 종교 문제는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화요일이건 목요일이건 일요일이건 성당이나 왕국회관에 서로 마음대로 가게 놔둔다고, 아들 녀석은 지금 여호와의 증인인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데 두 딸은 아빠 엄마의 아무 편도 들지 않기 위해 아무 곳에도 나가지 않겠다면서 아빠가 자기들을 ’레지나’와 ’가타리나’ 라고 불러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라고…!

그리고 C형제 부부는 서로 성당이나 왕국회관에 나가는 관계로 농사일을 함께 못하는 때라도 상호간에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일요일 예배를 고집하지도 않는다나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조심스럽게 질문했지요. "형제님은 농사꾼이면서도 매월 꼬박꼬박 교무금을 잘 납부하는데, 그것 때문에 부인과 마음 상한 경우는 없었나요?" 라고 말입니다.

C형제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교무금을 얼마 내든지 우리 집 사람은 관여 안 해유. 그 대신 저두 그 사람이 왕국회관에다가 얼마 내는지 알아보려 하지 안 해유."

그래서 제가 다시 궁금증으로 질문했지요. "여호와의 증인은 십일조 내라고 강요 안 해요?"

그에 대한 C형제님의 대답은 사제인 저를 조금은 놀라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십일조라는 게 없대유. 그냥 헌금궤라는 것을 놔두고 아무 때나 마음 내키는대루 낸대유. 그 사람들은 돈 가지고 말허는 게 거의 없슈. 거기 책임자를 ’감독자’라고 허는디 그 사람이 한 달 18만원 받는다고 그려유."

"그래요? 그럼 그 감독자라는 사람은 결혼 안 했나요?" 이렇게 반문하는 S형제님을 향하여 C형제님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사제로서 마음 한 구석에 어떤 숙제를 떠 안는 기분이었습니다.

C형제님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감독자는 지금 그 왕국회관에서 사는디, 거기다 5백만원 전세금 내고 산대유. 전세금 낼 돈 없으면 거기서 살 수 없고 밖에서 살면서 봉사하러 다녀야 된대유. 그 전세금은 자기 부모님인가 누가 빌려줬대유. 한 달 18만원 받고 사는 것두 모자라면 자기 집에서 갖다 써야 헌대유. 거기 전기값 같은 것두 자기가 내야 허구유."

다시 S형제님이 C형제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럼 그 왕국회관 운영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헌금은 얼마나 되나요?"

이에 대한 C형제님의 대답은 더욱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본래 여기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래유. 여기 왕국회관이 빈약허니께 멀리서 서산이나 홍성이나 천안에서두 여기 임시로 와서 농사철에 일하고 가게 일도 도와주고 그러면서 공동체를 만들어유. 감독자 18만원은 중앙인가 어디서 보내주고 여기서는 헌금 모아서 여기 운영도 허구 중앙에 보내기도 허구 전도지 만들고 그런대유."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끼리 지독하게 뭉치고 그러는가 보지요?" 이렇게 반문하는 S형제님에게 C형제님의 대답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였습니다.

"저는 제 집 사람이 혼배할 때 약속 한 걸 안 지키고 거기 가서 오랫동안 맘 고생했지만, 지금은 포기허구 서로가 그냥 지내기로 맘먹고 지내니께 편해유. 제가 그 사람 때문에 그 여호와의 증인이 어떤 건가 알아보려구 했는디, 저는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자로 젖어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허는 소리 받아들일 수가 없지요. 허지만 그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보고 다 사탄이라 허는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예수님보고 사탄이 절하라고 허면서 그러면 세상 권력을 주겠다고 했잖유! 그렇다면 정치해서 세상 권력을 가지고 힘쓰려 하는 사람들이 사탄이라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러면서 자기들은 절대로 정치하러 가지 않잖어유. 그러니께 그 사람들 자기들 딴에는 지조 있잖유? 그런디 신부님이나 교황님보고도 사탄이라고 허니께 속상허지유…."

이런 C형제님의 말을 듣고 저와 S형제는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괜히 C형제님의 마음만 아프게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오면서 저는 S형제님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저 C형제 집에 방문하시는 것은 좋지만, 가서 그 댁 자매님에게 ’회개하라’고 강요하진 마세요."

그러자 S형제님은 다시 즉각적인 신념을 토로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그 자매님 회개를 위해 기도하시고 저에게 명령만 하세요. 그 일은 제가 틀림없이 할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들 명령 따라서 한 일에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형제님, 제가 지금 하는 말은 저 C형제님 댁에 가서 그 집 부부간의 평화공존을 깨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S형제님을 나무라고 나서 C형제에게 말했습니다. "유리안나 자매와 아들 라파엘에게 제가 그러더라고 전하세요. 그 상태로 행복하게 살라 하더라구요. 신부가 그러더라구요…"

그러자 S형제님이 저에게 항의조로 말했습니다. "아니! 신부님, 해야 할 일은 해야잖아요?"

"그렇지요! 헌데… 형제님, 인천에 계신 형제님의 부인과 자녀들보고 여름 휴가 차 여기 계신 남편 그리고 아빠께 와서 며칠 놀다 가라 하세요. 우리 성당 뒷산에 제가 닦아놓은 야영장에 저의 텐트를 무료로 빌려 줄 테니까요…! 그러면서 저 C형제 부인도 초청해서 우리 성당 야영장에서 삼겹살 구이로 두 집 식구 파티 합시다."

이렇게 말하는 저를 성당 앞길에서 내려준 C형제님은 "신부님, 오늘 잘 먹었슈. 이 S형제님은 지가 모셔다 드릴께유."고 말하고는 자기 트럭의 가속기 밟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까만 밤의 도로를 질주해 갔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한 우린, 그렇게 딱한 사나이들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딱한 이유는, 사목자로서 어떤 마음이어야 하나...?  그래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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