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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챙겨주는 결혼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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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챙겨주는 결혼기념일
1986년 이후로 11월 30일은 나의 결혼기념일이 되었다. 그런데 결혼기념일을 딱 두 번 치르고 남편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 미리 예고라도 있었으면 평생 받을 선물을 한꺼번에 몽땅 받아 놓았을 텐데... 아들 경선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녀석이 느닷없이 "엄마는 결혼기념일이 언제예요?" 하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11월 30일이라고 알려줬더니, 왜 진작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잔소리까지 해댄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결혼기념일을 챙겨줄 거라고 걱정 말라나.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해주고 있다.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녀석에게 받은 첫 번째 선물은 팥알 만한 크기의 오팔 반지였다. 그리고 두 번째 선물도 캣츠아이 반지였다. 반지에 대해 그 녀석이 알 리가 없다. 금은방 주인 아주머니가 그때그때 알아서 유행에 맞게 골라준 거다. 물론 무엇이 좋겠냐고 충분히 자문을 구한 다음에 샀단다.
아마 그 아주머니는 녀석의 수다에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을 것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왜 꼭 반지를 선물하는냐고 물었더니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단다. 아빠는 떠났어도 엄마는 제곁에 영원히 남아 있으라는 뜻인가? 그러고 보니 ’영원하다’는 말은 참 슬픈 말이기도 하다.
나와 하나뿐인 내 아들은 결코 부자가 아니다. 아들은 틈틈이 친척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 저금을 해둔다. 그리고 기념일마다 제 어미에게 줄 선물을 사는 데 그 동안 모아둔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이다. 옷, 화장품, 현금... 올해는 또 무엇을 받을까?
그것도 아주 큰 고민이다. 받고 싶은 것을 얘기하라며 기념일 며칠 전부터 고문을 하는데,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난다. 기념일 마다 하도 속으로 울다보니 이제는 속으로 우는 것에도 도사가 다 되었다. 나만 혼자서 이 기쁨을 누리고 있으니 어찌 눈물이 안 나겠는가. 녀석의 달력엔 그 날을 기다리는 동그라미 표시가 방긋거리고 있다.
남편은 가고 없지만 나의 결혼기념일은 아직도 젊음을 유지한 채 살아 있다. 해마다 그 날은 가장 슬프고도 가장 아름다운 나의 결혼기념일이다.
이 미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