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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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나중에 엄마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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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수 [fr1004] 쪽지 캡슐

2000-09-30 ㅣ No.1826

 

 

우리도 나중에 엄마가 되는데..

 

 

 

  

 

     너 그날 일이 잘 풀렸니? 응? 누가 아니래니. 어머나, 그래서?”

 

     대학 1학년인 큰딸의 전화 통화는 한 시간이 넘어도 그칠 줄을 몰랐다.

 

     “용건만 간단히 하거라”라고 벌써 몇 번이나 말했건만 딸은 고개만 끄덕였지 도통 끊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무식한 엄마가 되는 수밖에 없지.

 

     “매일 무슨 얘기가 그리도 기냐? 빨리 전화 끊지 못해!”

 

     상대에게 들릴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다.

 

     딸은 질겁을 하고 전화의 송신 쪽을 손으로 감아쥐었다가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지었다.

 

     큰딸이 방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새로 울렸다.

 

    그러자 동시에 세 개의 방문이 열리며 세 딸의 얼굴이 쑤욱 나왔다.

 

    나는 무서운 얼굴로 그 애들을 흘겨보았지만 조금도 겁내질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제 전화가 아닐까하는 기대에 찬 얼굴일 뿐이다.

 

     나는 애들에게 시범을 보이듯 점잖게 전화를 받았다.

 

     “네, 석관동입니다.”

 

     한참 만에 죽을 힘을 다해 내는 듯한 남학생의 어색한 음성이 들렸다.

 

     “저어, 저는 지혜랑 같은 교회 다니는 김재구인데요. 지혜있어요? 문학의 밤 때문에 그러는데요.”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교회 행사라면 모든 게 다 무사 통과되는줄 아는 모양이다.

 

    중학교 3학년인 셋째 딸은 기숙사 사감같은 내가  싫다는 표정으로 입을 댓발 내밀더니 수화기를 받는다.

 

    그러더니 괜히 상대에게 퉁명을 떠는 모습이 귀엽긴 했다.

 

 

 

     “통화는 용건만 간단명료하게 해. 전화가 무슨 오락시설인줄 아니?”

 

     “엄마, 전화는 오락시설도 돼요. 우린 전화로 즐기거든요.”

 

     자녀가 장성했다는 증거 중에 전화벨이 자주 울리는 것도 들어간다.

 

     나는 전화로 인해 딸들에게 인색하고 무식하고 거짓말 잘하는 어머니가 곧잘 된다.

 

     딸들이 나가기 위해 현관에 있을 때 오는 전화에다가는 으레 벌써 나갔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애들 교환원 노릇에 하루 해가 질 때도 있다.

 

     전화! 전화! 전화! 그놈의 전화가 어느 바쁜 날 아침 아홉시 정각에 왔다.

 

    그 시각은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을 데리고 친척 윗분들을 뵈러 나가야하는 약속 시각이었다.

 

    나는 둘째를 찾는 전화에 대고 이미 외출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등을 돌리는데 언제 나왔는지 딸은 거실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애써 다듬은 얼굴이 다 망가졌다.

 

     “너 왜 우니?”

 

     “엄마가 끊은 전화, 용욱이 오빠 전환줄 다 알아요. 왜 거짓말을 했어요?”

 

     “넌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니? 우리, 시간 지키자. 늦으면 윗분들에게 신용 떨어진다.”

 

     딸은 계속 울어대며 전화를 못 받은 걸 못내 아쉬워했다. 나는 화가 났다.

 

     “아니, 그렇게 원통하면 네가 나중에 전화를 걸면 될 게 아냐? 어서 가자.”

 

     “엄만, 전화가 집집마다 다 있는 줄 아세요? 그 오빤 아까 공중전화로 건 거예요.

 

     등록금이 없어서 억지로 군대간대요. 내일 아침에 떠난다는데 어디에다 전화를 해요?

 

    아홉시에 전화를 걸라고 해놓고 제가 그냥 나갔다면 저를 어떻게 보겠어요?

 

    엄마는 우리한테 신용, 신용 하시면서 엄마 신용만 지키고 우린 신용을 잃어도 되요?

 

    우리도 나중에 엄마가 되는데….”

 

     내 중심의 사고가 어린 딸을 통해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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