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1일 (금)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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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마르코 12, 13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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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6-03 ㅣ No.172970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12,17)

세상을 살아가면서 대부분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과 세금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세금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세금과 관련해서 가장 잘 알려진 표현은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12,17)라는 예수님의 표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금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유대인들은 성막을 지을 때 최초로 세금을 냈습니다. (탈30,11~16) 사무엘이 왕을 내세우는 것을 반대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1사8,14~18)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누어진 이유도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종교세를 매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열왕12,4)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소득의 28%를 세금을 바쳤기에,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내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12,14)라고 묻게 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물었던 의도는 예수님의 답변을 꼬투리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는 불순한 의도이자 속셈이었지만, 당대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연스러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는 그만큼 무거운 세금에 대한 불만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 시대를 거쳤기에 로마의 식민지 유다의 미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금 납부 여부는 로마 식민지 법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법을 따르느냐는 문제와 결부된 사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일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납세를 거부했지만, 로마에 빌붙어 살아가는 헤로데 당원들은 당연히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다, 는 입장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세금 납부 여부는 양날의 칼처럼 미묘한 실제적인 문제였기에 예수님 또한 이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으며, 이제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질문의 어느 쪽을 선택하여도 예수님은 빼도 박도 못한 난처한 상황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난처한 상황은 한 마디로 진퇴양난의 기로였던 것입니다. 즉, ‘세금을 내라’고 하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군중을 실망케 하고 분노하게 할 것이며 , ‘내지 말라’고 말한다면 로마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처벌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5,12)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한 후에 기지를 발휘하여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순간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서 의기양양한 그들은 이렇게 지시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한 대로 동전 한 닢을 가져오자,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습니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12,16)하고 대답하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12,17)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돌려주라, 돌려드려라, 는 말은 결국 땅에 발붙여 사는 동안 화폐를 발행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하늘나라 시민은 하느님께 속한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또 다른 차원이라고 봅니다. 

마태오 복음 17장에 보면, “당신네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17,24)하고 묻자, 베드로 사도는 엉겁결에 물론 스승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심을 알고 있었지만,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싶었기에, “내십니다.”(17,25)하고 답변하였습니다. 이를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나서,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하거든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17, 27)하고 말씀하심을 통해 베드로를 위로하고,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을 실제로 실행하십니다. 더 큰 일,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은 의연함과 언제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진리를 살아가는 삶의 자세로 당당하게 세상 집권자들 앞에 살아야 합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황제의 편’이지만, 진리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소유이며 하느님께 속한 자녀입니다.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우리네 삶이 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른 분별력을 주옵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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