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1일 (금)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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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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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6-03 ㅣ No.172954

 

제1독서
▥ 베드로 2서의 말씀 1,2-7


사랑하는 여러분, 

2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써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5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6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7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의 사랑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포도밭 주인(하느님)은 당신의 포도밭(이스라엘 백성)을 소작인(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주인은 당신의 종(예언자)들을 여러 차례 보내지만, 소작인들을 그 종들을 학대합니다.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지만, 그마저도 포도밭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 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실감나게 해 줍니다. 

계속되는 인내와 관용과 자비가 배신으로 돌아와도, 그 사랑이 너무도 커서 아들의 목숨까지도 건네주어 버리는 애타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동시에 이 사랑의 이야기는 그 애절한 사랑이 거절당하고, 배반당하고, 끝내는 외아드님의 목숨까지 살육당하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가슴 아픈 사랑의 노래입니다.

 

또한 이는 그 큰 사랑을 거부해버리고 마는 나약한 우리 인간의 배신과 반역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귀한 사랑마저도 한갓 우리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짓부숴버리고 마는 배은망덕의 패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포도밭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실까요? 

그것은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어 성전정화를 하시자,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요.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라고 따졌기 때문에, 당신의 권한과 신원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리석은 꾀와 작태를 비웃으시며, 하느님의 깊은 섭리와 계획을 밝히십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다’는 성경 말씀의 인용을 통해,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겠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펼치신다는 역설의 신비를 가르쳐줍니다.

곧 당신께서는 버려진 돌이셨지만 머릿돌이 되시어 새로운 집, 구원의 새로운 백성을 세우실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정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보장된다는 유대인들의 선민의 특권이 해체되고,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공동체에 보편적 구원이 사명으로 맡겨졌음을 드러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특별히 포도원 주인의 믿음과 자비를 보게 됩니다.

도조를 받으러 보낸 종들이 계속해서 무참히 맞고 죽는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기까지 베풀어지는 믿음과 자비입니다.

그것은 마침내는 당신의 아들마저도 죽음을 당하지만, 끝까지 포도원을 포기하시지 않으시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이는 아무리 인간의 죄가 크다 하여도 인간의 죄를 뛰어넘는 하느님 계획의 초월성과 구원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입니다.'(마르 12,11) 

사실 도조를 바치지 않고 못된 일을 저지른 소작인들, 그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잘못과 죄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아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을 밀쳐내고, 그분의 권리를 강탈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주인의 아들마저도 죽이고마는 악한 마음과 배은망덕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좋은 결실을 맺고, 그 풍성한 소출을 도조로 바쳐야 할 일입니다.

감사와 순명의 열매, 자비와 믿음의 열매를 바쳐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 12,11)

주님!

당신께서 제게 하신 일, 놀랍기만 합니다.

도망칠수록 더 강한 사랑의 철창으로 꽁꽁 묶으시고,

제 안에 꿈틀거리는 반역을 멈추게 하십니다.

거부되고 버려지고 넘어져도 오히려 그를 통해 구원의 섭리로 이끄시고,

감춰둔 당신 사랑의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하오니, 주님!

언제나 제 머리 위에, 당신 사랑을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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