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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한 바퀴 돌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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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350 지난 일요일 오후에 다른 팀과 축구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아침 축구는 생략. 오랜 만에 새벽에 사진을 찍어러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내는 토요일 저녁에 일기예보를 확인 하더니 일요일에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김이 샜지만 오는 비를 오지 못 하게 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모처럼 팔자에 없는 늦잠 한 번 늘어지게 자겠다는 야무진 꿈을 고이 품고 자리에 누웠다. 얼마를 잤을까? 눈 주위가 간질거리는 느낌에 눈이 떠졌다. 커튼 건너 바깥 세상이 어스름 밝았다. 시간을 보니 5 시 25 분. 동창이 밝고 노고지리 우짖기 시작했다. 눈꼽도 떼지 않고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지?" 해가 뜰 시간이 바로 코 앞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목적지를 'Rockland Lake State Park'로 정했다. 집에서 차로 25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9W를 타고 가다 보니 Tapanzee 다리 건너 해가 떠 오르고 있었는데. 구름에 묻은 빛깔이 가슴을 뛰게 했다. 나이 먹어가면서 색에 자꾸 가슴이 뛴다.
마음을 재촉해 도착한 파킹장에 벌써 차가 서 너대 눈에 띄었다.
벌써 온 사람들은 호수 주위를 걷거나 뛰면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 발길을 떼었다. 천천히 호수를 한 바퀴 돌 요량이었다.
한 바퀴- 한 사이클-를 돈다는 건 참으로 신성한 일인 것 같다. 내게 주어진 한 싸이클을 걸어간다는 것은.
햇살이 물 위를 미끄러져 다가왔다. 수초 사이를 요리조리 비껴가면서---- 수초 이파리에 불이 붙은 것 같다.
백조 한 마리
수련 잎 사이로 햇빛을 받아 반사된 물빛이 반짝인다.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 1:3)
호숫가의 풀들은 키가 훌쩍 컸다. 내 머릿 속에는 시편 1장의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내 영혼의 키는 얼마나 컸을까? 성장을 컴추고 오그라들고 있는 건 아닌 지.
그러고 보니 갈증이 난다.
풀섶엔 풀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피어 있다.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알아주지도 보아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어나 어둔 풀섶을 비춘다.
이 작은 풀꽃들이야 말로 무명을 밝히는 등불같은 존재들이다.
새로운 갈대가 삐죽이 고개를 내 일었다. 쑥쑥 키가 커서 머지 않아 내 키를 넘어 나를 내려다 볼 것이다. 바림이 불면 제법 큰 소리로 버석거릴 것이다.
이제 막 잎이 자라고 푸르기 시작했는데 아스팔트에 떨어진 이파리 둘.
벌써 물기가 많이 빠졌다. 결국 생물학적인 죽음은 물기가 빠져나가는 일이 아닌가.
몸의 물기 그리고 영혼의 물기.
내 영혼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을까?
마른 갈대 사이로 갈대의 새 순이 돋아나고 있다.
숲 사이로 햇살이 걸어나오고 있다. 빛의 가름마. 빛이 닿은 곳의 초록은 눈 부시게 푸르다.
아직 햇살이 물에 닿지 않았다. 혼돈. 바람이 불자 물결이 일고 물속 바위에 부딪친다. 거품이 생기고 물무늬도 생긴다.
그리고 스러진다. 쉐익스피어의 희곡 Macbeth 의 5막 대사 중 일부가 떠오른다. (대학 시절 외웠던 구절인데 신기하게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소멸을 생각하면 아프던 시절도 있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들을 때면 가슴이 아렸었다. 소멸의 시간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은 늘 내 가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곤 했다.
저 물거품을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풀꽃들이 지천으로 널린 어느 풀밭 에서 만난 색.
백조 한 쌍이 아침 산책을 위해 뭍에서 물로 길을 나섰다.
초록 물감을 풀어 놓은 듯----
거위 가족. 새로 생긴 새끼들이 귀엽다. 아직 솜털이 보드라운 어린 새끼들. 호수 한 바퀴를 돌면서 마주치는 삶과 죽음들.
고사목에 씨가 내려 앉아 싹이 트고 잎이 났다. 소멸과 생성은 공존하는 것일까?
물가의 나무 두 그루가 베어졌다. 가운데가 텅 비었다.
내년이면 환갑. 동양적으로 치면 삶의 한 싸이클을 지내게 되는 셈이다. 아마도 내 육신도 저 고목처럼 허허롭게 비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 언제일지는 모르나 소멸을 향해서----
육신은 그렇다 치고, 내 마음은?
아마도 비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야 하는 것일 것 같다. 완벽한 소멸을 위해서.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희망을 낚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이 희망은 다른 어떤 존재에게는 절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 같다. 소멸하는 곳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생성되고, 희망의 다른 끝자락에는 절망이 달려 있고----
그런 부조리한 삶을 살아내는 일, 그 싸이클을 채워내는 일, 얼마나 눈물 겹고 신성한 일인지.
호수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처음 발을 뗀 곳, 끝으로 돌아왔다. 처음이 바로 끝인 셈이다.
시작이 끝이고 끝나는 곳이 새로 시작하는 곳이다.
내년이면 환갑이다. 한 생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시작되는 시간.
사는 것이 호수 한 바퀴 도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