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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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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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6-06 ㅣ No.173060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고,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사제 성화의 날은 199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제안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30년이 되어갑니다. 교황님의 제안에 따라서 각 지역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고, 고백성사를 보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제 성화의 날은 제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2001년이니까, 23년 전의 기억입니다. 당시 경기서부지역에 있던 저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었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에 체험담을 발표하라는 제안입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쑥스럽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사료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체험담을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신문에서 읽었던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봄누에는 죽기까지 실을 뽑아내고, 초는 재가 되어야만 눈물이 마른다.’라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사제생활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이야기 했습니다. ‘아직 근심이 오지도 않았는데 기쁨이 날아가 버린다.’라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은 주님께 의탁하며 지금 순간을 기쁘게 지내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생긴다.’라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지내는 삶에서 사목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산보는 저의 취미이지 운동입니다. 비가 개인 어느 날, 산보를 가려고 하는데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성당에 왔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같이 산보를 갔습니다. 우산을 놓고 왔다고 해서 학교에 갔고,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난 개천도 갔고, 장날이라 시장에도 갔습니다. 이렇게 산보를 잘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산보는 걸으면서 주변을 보는 것인데, 아이는 산보가 어느 특정한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산보가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느님 앞에 저도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지 다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이 가야할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착한 목자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만 저의 마음이 닫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을 못 보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사랑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사목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 때입니다. 아이들이 성당 버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성당까지 3시간을 넘게 뛰어 왔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뛰어 왔습니다, 미사를 다 마치고 마당에 있는데 아이 둘이 마라톤 선수처럼 성당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성당 버스를 놓쳐서 뛰어 왔다고 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뛸 수 없어서 집에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사주고, 제 차로 다시 집까지 갔습니다.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으로 왔습니다. 아이들은 2시 군인미사를 보았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수난 복음을 읽었고, 강론했지만 그리 큰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시간 넘게 주일 미사를 보겠다고 뛰어온 아이들에 제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때로 저는 주님 수난의 길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헸던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르다고 했던 베드로 사도처럼 지냈습니다.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유다처럼 지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처럼 지냈습니다.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모두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목은 선택입니다.

 

사목의 결실도 나누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서 선교했던 이야기, 농산물 직거래를 했던 이야기, 차량봉사단을 운영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제성화의 날 체험담 발표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또 다른 제안이 있었습니다. 교구 사목국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직접 저를 찾아 왔습니다. 제갈공명도 아닌데 찾아와주니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구청에서 3년을 기쁘게 지냈습니다. 주된 업무는 교육담당이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사목국에서 동료 사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3년 전 사제 성화의 날에 했던 발표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 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 주소서.” 오늘 하루 사제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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