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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103위 시성과 한국교회3: 103위 시성이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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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18 ㅣ No.624

[103위 시성 25주년 기획 - 103위 시성과 한국교회] (3) 103위 시성이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


외적 변화 만큼 내적 쇄신에 힘써야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103위 성인 시성식에 참석한 100만 신자들이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 이후 교회는 25년 간 신자 수의 급증, 한국 성인을 본뜬 세례명, 한국 주보성인, 순교자 공경, 성지 조성 등 다양한 변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외적 변화만큼이나 신자들이 열성적 신앙 활동과 내적 쇄신을 거듭하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103위 시성이 한국 교회의 제삼천년기 복음화를 진정으로 꽃피웠는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현재 신자들의 신앙의 모습만이 그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성식 후 우리의 자세

 

당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 위원장이었던 김남수 주교는 시성식 직후 가톨릭신문(1984년 5월 20일자) 2면 상단에 ‘시성식 후 우리의 자세’라는 글을 실었다.

 

“그렇게도 바라던 1백3위 한국순교복자들의 시성식이 그분들의 순교의 피가 흘러내린 한강변 새남터와 절두산을 건너다 볼 수 있는 여의도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중략) 우리는 우리의 성인들을 모시기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해 왔다. 아무도 믿지 못했던 최단시일에 시성식이 허락됐고 이미 거행됐다. 이제는 우리의 성인들을 정성껏 공경하며 그분들의 정신과 생활을 본받는 일만이 남았다.”

 

김남수 주교는 시성식 이후 103위로 시성된 성인들에 앞서 한국 교회를 창립했던 선조들의 시복시성 추진을 우리들의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현재 103위는 기해 · 병오 ·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성인들로만 구성돼 있으며, 그보다 앞선 신유박해 순교자들은 시복이 되지 않은 상태로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124위에 속해 있다.

 

김 주교는 이러한 숙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 자발적 신앙을 가졌던 성인들을 본받아 스스로 실천하는 능동적 신앙자세 ▲ 평신도 중심의 신앙생활을 실천한 성인들처럼 직장이나 사회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세 등을 지켜나갈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와 같이 순교성인들을 열심히 공경하며 그분들의 생활을 본받는 일이 바로 시성식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요체”라고 말했다.

 

 

25년간 우리의 반성

 

하지만 시성식 후 여러 기대와 변화 안에서도 한국 교회가 스스로에 대해 후한 평가만을 내릴 수는 없을 듯하다.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 소장은 2004년 ‘103위 시성 20주년’을 맞아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현양운동이 과거의 그것에 비해 활성화됐는가 하는 부분에는 적잖은 의문이 따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103위 성인의 전기도 시성식 이전에 발간된 것이 고작이고 성인들에 대한 연구도 그동안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며 “이런 바탕에서 순교신심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103위 성인은 알기 운동의 형태로 진행됐을 뿐 몇몇 단체를 제외하고 장기간 현양운동이 지속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103위 시성 이후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인 124위 시복시성을 위한 노력은 ‘열기’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다. 시복시성기도문이 배포됐지만 아직 많은 본당들이 기도운동으로 전개해나가지 않고 있으며 일부 신자들은 124위와 시복시성 과정 등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103위 성인 탄생의 기쁨과 이로 인한 발전의 추진력이 퇴색하고 있는 것은 물론 지역과 교구 차원의 의지 부족으로까지 볼 수 있는 문제다. 특히 순교성인들의 생애와 믿음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미흡하다보니 신앙선조들의 신심을 바탕으로 한 자양분을 한국교회 스스로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위기 상황 또한 장애물로 다가온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고 삶과 신앙이 유리된 이중적 신자 생활, 쉬는신자 증가, 주일미사 참례 신자 비율의 감소 등은 순교신심이 깊은 신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앗아간다.

 

가톨릭신문은 2004년 사설에서 “성직자들의 권위적 사목활동이나 수동적이고 구태의연한 평신도들의 신앙 자세, 현세적이고 지나치게 활동 지향적인 수도자들의 모습 등 교회 구성원들 각자가 여전히 드러내는 모습 또한 교회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데 부족한 모습”이라고 전한 바 있다.

 

영남교회사연구소 마백락 부소장 또한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한 교회의 모습은 103위 성인을 잉태한 신앙의 터전 때문이지만 기쁨으로 충만했던 그 때의 감격을 잊고 있는 지금과 냉담자가 늘고 있는 현실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103위 순교자가 성인으로 선포된 지 25년이 됐다. 한국 순교신심의 은경축을 여의도광장에서의 감동으로만 되새기며 일회적으로 자축하기보다 신자 개인의 신앙생활 성찰, 순교신심의 내면화, 124위의 시복시성에 대한 관심 등이 시급하다.

 

[가톨릭신문, 2009년 5월 17일,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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