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뉴미디어 - 미디어 사용, 신앙행위일 수 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15 ㅣ No.736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뉴미디어


미디어 사용, 신앙행위일 수 있다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걸까? 혹여 이상한 취미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자식들을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참 많다. 잘 알고 있듯 어떤 컴퓨터 운영체계의 이름은 ‘창문windows’이다. 불길한(?) 도구를 부르는 이름치고는 너무도 시적이며 영감적이다. ‘창문windows’이라 불리는 그 두뇌의 창가에 앉아, 역설적으로 세상으로 향하는 창문에 스스로 새까만 블라인드를 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라디오건 티브이건 스마트폰이건, 전자기기를 끼고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항상 물음표와 불안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흐름을 바꾼 사람들, 예컨대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끼고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전자두뇌를 만지고 조작하고 읽고 경험하고 느끼면서, 그들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일상의 소소하면서도 거대한 패턴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고 보니, 참 알 수 없다. 전자기기들 - 특히 ‘뉴미디어’ 시대를 탄생시킨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항상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그것들은 유해한 내용과 ‘중독’과 ‘단절’을 양산하는 몹쓸 기계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은 지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민주적’ 기계이자 소통과 친교를 가능케 하는 선한 도구이기도 하다.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교회의 관점 역시 마찬가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따르면, 미디어는 어떤 ‘광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다. 그리고 그 광장에선 다양한 생각이 교환되고 새로운 경험과 친교의 꽃이 핀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티브이, 라디오 등의 다양한 사회매체를 ‘하느님의 선물’로 여겼다. 그렇다 해서 교회가 현대의 사회매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 미디어는 증오와 갈등을 조장하고, 사람 사이의 진정한 상호작용의 가치를 떨어뜨려 사회의 내적 연결력을 현저히 저하시킨다.

교회가 단지 미디어의 두 얼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지적하는 것은, 사람들은 상반된 의도와 태도로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고 그 결과 같은 미디어의 사용이 정 반대의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 교회의 신앙이 미디어의 사용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엄밀히 말해 미디어의 사용은 버튼을 누르는 등의 기술적 조작이며, 따라서 미디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술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행위 안에 선한 마음과 신앙에 의해 촉발된 동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미디어의 사용은 또한 신앙행위일 수도 있다. 뉴미디어 시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저마다의 미디어를 쥐여주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컨대 그 흔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신앙행위’가 되는 순간이 있다. 놀랍다. 바로 그때 뉴미디어는 ‘구원의 도구’이다.

* 성기헌 신부(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 -
1999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으며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매스컴과 종교의 관계 연구’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신문, 2014년 7월 13일,
성기헌 신부(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



1,14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