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브라질 과라니족 예수회 선교 유적지: 하느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 그 경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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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10 ㅣ No.623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브라질 과라니족 예수회 선교 유적지


하느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 그 경계의 차이

 

 

브라질은 나의 20대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곳이자, 내 평생의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좌절과 외로움이라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이 층층이 중첩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브라질은 남들이 생각하는 시끌벅적한 삼바 축제의 화려함보다는 늘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계기는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시절 과라니족 예수회 선교 유적지가 있는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S Miguel das Missois)를 다녀오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 준비를 위해 잠시 브라질에 체류 중이던 나는 유학 서류들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내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아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유학을 결심하긴 했지만, IMF 시절 유학을 떠났던 학생들도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마당에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치 않게 했거니와 홀홀단신으로 낯선 땅에서 몇 년이 될지 모를 타국생활을 견뎌야 한다는 두려움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무작정 짐을 꾸려 떠난 곳이 바로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였다. 영화 ‘미션’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니만큼 그곳에 가면 영화 속 심금을 울리던 아름다운 오보에 선율 같은 그 무언가가 번뇌의 마음을 정화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광야에 세워진 하느님의 교회

 

마치 광야의 교회를 연상시키듯, 광활한 초원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의 예수회 선교 유적지는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 지방의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외딴 시골에 자리 잡고 있다. 초기 과라니족 예수회 선교 시설은 브라질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에 걸쳐 총 30개가 세워졌지만, 현재는 브라질 1곳, 아르헨티나 4곳만이 남아 그 자취를 느낄 수 있다. 그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브라질의 예수회 선교 시설은 흔히 ‘7개의 미션 마을’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처럼 총 7개 지역에 걸쳐 나뉘어있으며,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상 미겔 아르캉주(S Miguel Arcanjo)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단체관람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한 번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미션’의 인지도에 비해 상 미겔다스 미송이스는 대외적으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성지’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리스도교 전파를 위해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온 선교사들이 첫 사목활동을 펼친 땅이 이곳이지만, 16세기 당시 정치 · 경제 · 사회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던 북동부의 올린다(Olinda)나 남동부의 오우루 프레투(Ouro Preto)와 같은 도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조되어 온 기존의 브라질 교회사 서술에서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는 이 두 도시의 그늘에 가려 늘 ‘숨겨진 성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한때 약 3만 명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예수회 신부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공동체 삶을 영위해 나갔던 이 땅에 실현된 최초의 하느님 나라였다.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아 유럽인들의 신대륙 정복이 본격화되던 16세기, 가톨릭은 신대륙 원주민들의 교화를 통한 정신적 식민화의 수단으로 세속화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유럽 본토에서는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권위와 실질적인 권세가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그런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 쇄신운동이 바로 예수회였다. 당시 일반적인 유럽인들의 시각 곧,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사람과 비슷한 짐승으로 본 것과는 달리, 예수회 신부들은 그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자 서구의 백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이 깃들어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버려진 하느님의 백성들

 

하지만 예수회 신부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선교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스페인 왕실의 특별한 이해관계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하고 개척한 자들에게 스페인 왕실은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엔코미엔다’라는 일종의 공역제도로, 이것을 받은 정복 이주민들에겐 인디오 원주민을 그리스도교도로 개종시킬 의무와 동시에 강제 노역이나 공물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런데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이 이 지역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정복 이주민들의 힘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자, 스페인 왕실은 이들을 적절히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활동이 바로 이를 위해 이용되었던 것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단순히 원주민들의 교화를 목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쳤던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소박한 공동체적 생활에서 원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체를 발견했고 그들 영혼의 구원을 확신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선교마을은 잔악한 노예상인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자치구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많은 도망 노예들은 이곳으로 피신해 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에 위치한 90%의 선교마을이 이러한 원주민 보호구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예수회의 활동은 정복 이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1750년 1월 13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식민지 영토를 교환하는 국경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으로 스페인은 포르투갈로부터 라 플라타 강 북부의 산 사크라멘토 지역을 받는 대가로, 약 30만 명의 과라니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우루과이 강 동쪽의 넓은 지역을 포르투갈에게 넘겨주었다. 결국 이 조약으로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를 비롯한 모든 선교마을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포르투갈에게 넘겨주고 쫓겨나거나 또 다시 노예로 전락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과 예수회 신부들은 1754년과 1756년 두 차례에 걸쳐 포르투갈과 스페인 군대의 무력 공격에 학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예수회 추방이 시작되었다.

 

당시 포르투갈 왕실 또한 신대륙 정복 이주민들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들의 입장은 스페인과는 사뭇 달랐다.

 

황금시장으로 불렸던 동방무역의 쇠퇴와 1755년에 일어난 수도 리스본 대지진으로 국가 재건 사업을 위한 새로운 재원 확보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포르투갈 왕실은 이를 뒷받침해 줄 정복 이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 신부는 선교마을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의 입장을 교황청에 전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정글에서 나와 선교회를 지었답니다. 왜 하느님의 마음이 바뀌셨는지 모르겠답니다.”

 

사람의 나라의 권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교회, 그리고 그들을 피해 영화에서처럼 다시 정글로 숨어들어간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 심하게 훼손된 채 폐허화된 상 미겔 다스 미송이스 유적지의 거칠고 투박한 모습은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참 많은 생각들을 들춰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은 교회 외벽과 앙상한 내부 기둥만 남아있음에도, 깨어질듯 투명한 하늘 아래 조용히 대지 위를 지키고 있는 이곳의 모습이 오백 년 전 예수회 신부들이 꿈꿨을 하느님 공동체의 모습처럼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 임소라 안젤라 -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 학부를 졸업하고, 2000-2005년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연방 대학교에서 석 · 박사과정을 밟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 강사로 있다.

 

[경향잡지, 2009년 4월호, 임소라 안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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