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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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홍주의 순교자, 방 프란치스코와 박취득 라우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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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10 ㅣ No.622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홍주의 순교자, 방 프란치스코와 박취득 라우렌시오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 보면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 곧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을 내포(內浦)라고 하였습니다. 내포지역은 충남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이며, 내포의 중심은 홍주(현 홍성)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체포된 신자들 대부분이 홍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이토록 좋은 음식을 가져다주니…”

 

방 프란치스코(?-1799년)는 충남 당진군 면천면 대티리 출신으로 비장(裨將)이라는 작은 직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포의 회장 정산필 베드로와 원시보 야고보, 그리고 박취득 라우렌시오 등과 함께 교리를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홍주에서 체포된 뒤 6개월간 수많은 형벌을 받았습니다. 1799년 1월 21일(음 1798년 12월 16일) 사형 직전에 관례에 따라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이에 머뭇거리는 다른 두 명의 신자에게 “나 같은 죄인에게 이토록 좋은 음식을 가져다주니 어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으리오?” 하였고, “왜 슬퍼하고 낙심하는 것이요. 이는 사탄의 유혹이요. 만일 우리가 이렇게 좋은 순간을 놓치게 된다면, 이제부터 어떤 기회를 기다려야 하겠소?” 하고 15분간 격려와 권면을 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후회하면서 불꽃같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갖게 되었고, 교수형과 장사형으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저는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박취득 라우렌시오(?-1799년)는 1791년 신해박해에 면천에서 체포된 뒤 바로 무거운 칼을 목에 쓰고 가혹한 매질을 당하였습니다. 이에 “이 나무칼은 너무 가볍습니다. 쇠칼을 씌워주시오.” 하였습니다. 해미로 보내졌다가 홍주 관아로 보내졌는데, 재판관들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 조정에서 그를 석방하였습니다.

 

1798년 8월 19일 그는 자진하여 관아에 나가 말했습니다. “저는 나쁜 도리를 따르지 않고 다만 만물을 창조하신 천주를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참종교의 몇 가지 계명을 지킬 뿐입니다. 저는 그 천주를 공경하고, 다음에는 임금님과 관장들과 제 부모와 다른 어른들을 공경하며, 제 친구들과 은인들과 형제들을,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또 관리에게 “천주께서는 제게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주셨는데, 제 죄는 무수하니,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관리가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고 묻자, “저는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한 번은 옥리들이 그에게서 돈을 뜯으려고 두 발에 쇠고랑을 채우고 기와조각 위에 눕게 하여 갖은 학대를 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정의를 위하여 죽을 각오는 되어있으나, 만일 돈 줄 마음이 있었다면 옥에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옥리들의 분노를 돋우어 매를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는 “임금님은 육체의 임자가 될 수는 있으십니다. 그러나 천주만이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 인생이란 사라져버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였습니다.

 

일곱 달 뒤 새로 온 관리에게, 그는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중에 가장 큰 것이니, 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무서워함은 모든 이에게 공통된 감정입니다. 그러나 천주는 사람들의 첫째 아버지이시고 만물의 최고 주재자이시니 저는 죽을지라도 그분을 배반치 않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는 옥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서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봄과 가을은 흐르는 물과 같이 지나가고, 세월은 부시로 치는 돌에서 튀어나오는 불똥과 같아서 길지 못합니다. 특히 조심하셔서 천주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제가 옥에 갇힌 지 두 달 쯤 되어서 저는 어떻게 해야 천주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잠결에, 십자가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핏 보였습니다. 이 발현은 약간 흐리기는 하였지만 결코 그것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옥에 갇혀있을 때에 포졸들은 그에게 고통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옷을 벗긴 다음 상처투성이의 몸을 진흙 속에 버려두어 밤새 추위에 떨게 하고 비를 맞게 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18개월 동안 곤장 등으로 1,400대 이상을 맞았고, 8일 동안 물 한 방울을 마시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겪던 그는 결국 1799년 4월 3일(음 2월 29일)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이 문초를 받던 곳은 홍주목사의 동헌(옛 근민당, 현 홍성군청사 경내)과 홍주진영장의 동헌(옛 경사당, 현 한국통신 건물)이고, 순교자들이 갇혔던 감옥은 관아에서 좀 떨어진 남쪽 숲 안(현 법원과 검찰청 자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홍성·해미 성지 자료집”, 천주교 대전교구, 2006).

 

지난 해 대전교구는 교구설정 60주년 기념으로 도보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이때 교구장 유흥식 주교님은 “특별히 신앙 선조들을 본받고 내포교회의 뿌리로 돌아가려고 칼바람 속에서 험한 산길을 기쁘게 순례한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하였습니다. 방 프란치스코와 박취득 라우렌시오 순교자가 순교한 홍주성지를 순례하면서, 순교자의 마음을 닮았으면 합니다.

 

[경향잡지, 2009년 4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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