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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소공동체를 위하여2: 기초공동체는 왜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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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9 ㅣ No.69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2강 기초공동체는 왜 필요한가요?

 

 

* 이 글은 대구 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 님의 대림절 특강을 이용호 신부가 정리한 내용임을 밝혀 드립니다.

 

 

기초공동체라는 용어는 ‘교회의 기초공동체’, ‘그리스도인의 기초공동체’, ‘소공동체’, ‘반신회’, ‘반모임’이라는 용어들과 함께 혼용되어 왔다. 그러나 기초공동체는 일정한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본당의 기초가 되는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본질은 기초공동체에 두고 있다.

 

 

1부  기초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근거

 

1) 교황 바울로 6세의 사도적 권고

 

교황 바울로 6세의 ‘현대 복음선포’의 사도적 권고 58항에서 ‘교회의 기초공동체’라는 말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교황님은 1974년 이 권고문에서 “복음화하면서 복음화되는 것”을 역설하셨다.

 

‘복음화하면서’라는 뜻은 복음의 정신대로 제대로 사는 것, 즉 교회 공동체가 사귐과 나눔과 봉사를 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기초공동체가 생기게 되는 필요성, 요인은 교회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서 생기게 되었고 대도시 본당에서는 인격적인 교류가 잘 안되어서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생겼다. 교황님은 기초공동체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편향하거나 신심이나 돈에 연류되어서는 안되며 책임의식이나 전체주의 의식으로 퇴색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이 말씀의 요지는 기초공동체는 자신의 근본 소명에 충실하면서 복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화는 복음의 선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2)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교회

 

선교사명 51항 - “교회의 기초공동체는 복음화의 힘이다.”

 

기초공동체는 본당공동체의 분권적(일부분)이며 항상 본당에 소속되어 각자의 소속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는 이웃과 함께 누룩이 되어야 한다. 즉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봄으로써 이웃 안에서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대화하기 편한 2%의 ‘살찐 양들’(친한 사람들)만 돌보고, 아흔 아홉 마리의 소외된 양들은 돌보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소외된 이들을 찾으려는 구조가 바로 기초공동체이다. 예수님도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지 않으셨는가?

 

기초공동체란 밖으로는 이렇게 소외된 사람을 찾는 것이며 안으로는 공동체를 체험하는 것이다. 즉 위로받고 위로하는 것을 통하여 공동체를 체험하는 것이다. 흔히 반공동체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동체의 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5대 독자 외아들에게서 손자를 본 할머니가 며느리 자랑을 안 하겠는가? 시키지 않아도 며느리 자랑을 하듯, 능동적으로 기초공동체에 참여하기 마련이다.

 

또한 기초공동체는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능동적이어야 한다. 역할이 분담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반장, 부반장, 회계, 총무봉사자, 말씀봉사자(전례), 어린이를 돌보는 봉사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능동적인 참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능동적인 자세와 참여야말로 기초공동체를 이루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3) 아시아 주교회의

 

“말씀이 현존하셔서 기초공동체를 만드셨다.”

 

2001년 교구장 사목교서 실천사항 중 사랑에 바탕을 두고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행하는 것과 요한 바울로 2세의 능동적인 자세로 기초공동체에 참여하라는 말씀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기초공동체는 복음화의 과정이며 복음 선포인 것이다.

 

반둥에서 열렸던 아시아 주교회의 폐막 성명 중 기초공동체에 대한 선언문에서는 “말씀이 현존하셔서 기초공동체를 만드셨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1976년부터 교황, 주교님들의 이런 기초공동체에 대한 가르침은 강화되어 왔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처음 듣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반장을 하라고 하면 성당에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할만큼 그 직책을 어려워 한다.  기초공동체의 모임이 반상회 정도의 개념에 머물러 있어서 여전히 기초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 현실정이다.

 

4) 성경의 근거

 

마태복음 10장은 열두 사도를 파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열두 제자만 파견했을까? 이것은 제자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기초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인 것이다.

 

사도행전 2,4장에서는 초기교회의 신자들이 기초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하고 공동으로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2부  기초공동체의 구성

 

1) 지역 우선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10가구 정도의 20-30명을 단위로 구성한다. 너무 숫자가 많거나 적으면 공동체 형성에 어려움이 따른다.

 

2) 가족단위의 다양한 구성원을 형성한다

 

노인, 외짝교우, 소년소녀 가장, 신자가정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다. 신분이나 직업도 다양하다. 쌀가게, 회사원, 기능공, 공무원, 회사중역 등등.

 

3) 자율성을 가진다

 

기초공동체 안에서 평신도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무슨 교회의 법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다. 자율적으로 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할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지도 신부의 지도를 따른다. 하지만 의존하거나 수동적인 지시만 받아서 하는 것을 탈피한다는 뜻이다.

 

4) 복음나누기를 한다

 

이 부분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나 꼭 복음나누기 7단계를 고집하지 않는다.

 

물론 충분히 습득하여 공동체 전체가 잘 운용할 수 있으면 이 방법은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아직도 공동체 전체가 7단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하면 되겠다. 복음나누기 시간이 성경공부를 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관련된 생각이나 느낌, 즉 생활을 나누는 것이다.

 

모임의 시기 역시 매일 하든, 주 1회를 하든, 월 2회를 하든 그 공동체의 사정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지만, 최소한 기초공동체가 잘 되려면 주 1회는 모임을 가져야 가능해진다. 목표를 주 1회로 세웠다면 요일도 그 공동체의 여건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다.

 

5) 모임장소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 여러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로마 16, 5)라는 성서의 말씀에도 각 가정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던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기초공동체도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가정에서 모임을 갖도록 한다.

 

 

3부  기초공동체의 성격

 

1) 신앙공동체이다

 

기초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항상 말씀이 중심이 된다. 물론 모임에서 우리가 읽었던 성경말씀을 때로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신약에 ‘성령께서 오셨다’는 표현을 읽고 ‘구약에는 성령께서 안 계셨나?’,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면 신부님께 여쭈어 보자’ 등등, 다음 모임에 한사람이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온다든지 성경주해서를 찾아 본다든지 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신앙을 생활 안에서 실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체험을 나누는 신앙공동체가 바로 기초공동체이다.

 

서울 어느 본당의 경우 가두선교를 나갔는데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적어서 평가회의 때 무조건 나가지 말고 이웃에 있는 친분 있는 사람들부터 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이웃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단히 큰 성과를 얻었는데, 지난 번에는 20여 명에 지나지 않던 예비신자를 약 100여 명 이상이나 성당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또 어떤 본당에서는 예비신자를 처음 6개월간 소속 기초공동체에 나가게 하고, 6개월 후부터 교리를 시작해서 3개월 교리하고, 그 뒤 3개월 동안은 또다시 소속 기초공동체에 나가게 해서 1년 정도 교리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2) 예배와 기도의 공동체이다

 

가족적인 소규모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본당의 전례를 담당하기로 지향을 가지고 함께 기도를 한다. 여덟 살 된 꼬마 아이가 놀이터에서 머리를 다쳤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주선하고 9일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2-3일 지나는 동안에 다행히 아이가 나아서 9일기도가 끝나는 날 파티를 했다. 그런 일을 통해서 사귐의 신비를 체험했다면 고독한 그 가족들은 공동체와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

 

1996년 대우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대인 7,493명(약 3,190세대) 중 대도시 인구 47%가 하루에 한번도 이웃에 사는 사람과 말을 건넨 적이 없다는 응답을 했다. 현대는 그런 사람이 더 늘어가는 추세이다. 서로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기초공동체의 활동이 어느 시대보다 급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3) 성사(혼인, 신품, 세례, 견진)를 준비시킨다

 

혼인할 자녀들이 어디에서 결혼과 함께 신앙생활을 배우겠는가? 풍부한 결혼생활의 체험들을 기초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알려주게 되고 생활을 통해서 지켜봄으로서 알게 된다. 신품성사를 받게 되는 자녀가 있다면 처음 그 자녀는 바로 공동체 안에서 자라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이고, 성직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지역 공동체의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성소를 배우고 익히게 된다. 신학생이 양성되는 첫 단계가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성소의 중요성을 알리고 신학생을 보고 접촉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성소를 키워가게 된다. 그 외에 세례나 견진성사도 공동체 안에서 교리를 담당하는 봉사자들을 통하여 교육을 받아 성사를 준비하게 된다.

 

4) 사랑과 봉사를 실천한다

 

이웃, 형제, 자매를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과 봉사하는 모범이 바로 복음화의 지름길이다. 이웃에 사는 반원 집을 방문했는데 어린아이가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 간식을 챙겨주고 돌아왔다. 일을 나가는 그 자매가 저녁에 찾아와서 인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 “저 모임에 잘 나갈게요.”라고 했다.

 

이웃의 소중함을 알면 공동체는 더욱 활성화된다. 이웃을 방문했는데 감기 몸살로 며칠째 앓아 누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콩나물을 사다가 국을 끓여 먹였더니 다음날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작은 구원을 체험한 그 자매는 꼬박꼬박 공동체에 참석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서로 돕고 서로에게 체험이 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초상이 난 이웃집에는 자녀들이 신자가 아니어서 서먹했지만, 열심히 봉사하며 거들었더니 장례 후에 그 자녀 9명이 교리반에 입교를 해서 세례를 받았고, 그 구역에서는 경로당을 빌려 축하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봉사함이란 이웃이 남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섬기는 자세이며,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다.

 

끝으로 다시 한번 왜 기초공동체가 필요한가?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공동체의 지체이므로, 우리 모두는 공동체가 되고 싶어하는 갈망을 지니고 살고 있다. 구약에서 이 갈망을 다 채워주지 못하였으므로, 이 갈망을 채워 줄 대안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하여 보여 주셨던 기초공동체이다.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고 이웃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초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자유와 해방을 알리는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능동적인 참여를 하자.

 

[월간빛, 2002년 2월호, 정리 이용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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