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03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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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12-29 ㅣ No.559

성탄 후 평일강론[1230] - 성탄 후 6일째

 

        1요한 2,12-17     루가 2,36-40

    2003. 12. 30.

주제 :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는 방법

 

오늘은 성탄대축일 후 6일째 되는 날입니다.  

성당을 떠난 밖의 세상에서는 이미 성탄을 기다리고 축하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새해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만, 교회에서는 새해를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성탄축제의 기쁨을 이어갑니다.  성탄축제일의 기쁨은 성탄대축일을 포함하여 8일간 계속됩니다.

 

오늘 루가복음은 아기를 성전에 데리고 왔던 마리아와 요셉과 그 광경을 본 기쁨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안나라는 여인은 늘 성전 가까이에서 머물러 살았기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처음으로 그리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습을 밖에 나가서 선포합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그 기쁨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하고 우리가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기쁨을 전하는 내용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은 진정으로 하느님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노력을 하고 뭔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면 그 달라지는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세상의 모습에 따라 자기 삶의 모습도 바꾸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아마도 안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가졌던 태도는 그게 아니었던 듯합니다.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죄의 용서라는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하느님이 옆에서 우리를 부르셔도 우리는 합당하게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면 하느님에게 속한 것을 효과적으로 대할 마음의 자세는 갖추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현명하게 산다고 말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것과 사람의 것을 서로 대치시켜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세상의 모든 삶을 포용하고도 남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굽히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뜻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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