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향심기도: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1-30 ㅣ No.2009

[향심기도]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1)

 

 

가끔씩 만나는 이 아무개 신부님은 다른 이 아무개 신부님과 저를 보면 “어이 향심이들 잘 지내나?”라고 하십니다. 이 아무개 신부님과 제가 향심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향심기도, 한 번쯤은 들어본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만 정작 향심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고 계시거나 향심기도를 하고 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향심기도 전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이름부터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사람 이름 같기도 합니다만 향할 향(向) 마음 심(心), 즉 마음을 향하는 기도, 좀 더 구체적으로는 존재의 중심을 향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참 자아)에 현존하시기에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우리의 내면, 존재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향심기도의 시작은 1970년대 초 미국 메사추세츠 주 스펜스에 있는 성 요셉 수도원장이었던 토마스 키팅 신부와 윌리엄 메닝거, 바실 패닝턴 신부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토마스 키팅 신부는 1971년에 로마에서 개최된 한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회의에서 바오로 6세 교황은 성직자들에게 수도자와 평신도 모두의 삶에서 복음의 관상적 차원을 부흥시키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흥의 중요성을 믿은 키팅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의 수사들에게 동방의 명상 수련법만큼 현대인들에게 호소력 있고 접근하기 쉬운 그리스도교 관상 기도 방법을 계발하도록 요청하게 되었고, 같은 수도원의 윌리엄 메닝거 수사는 14세기의 익명의 고전 『무지의 구름』에서 그러한 기도 방법의 배경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책과 또 다른 관상 서적을 이용하여 단순한 침묵 기도 방법을 계발하고 그것을 ‘구름의 기도’라고 부르게 됩니다.

 

메닝거는 그 수도원에 피정하러 온 사제들에게 ‘구름의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았고 소문이 퍼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 했으므로 키팅 신부는 스펜서의 평신도들에게 연수를 제공하게 됩니다. 같은 수도원의 바실 페닝턴 수사 역시 성 요셉 수도원 밖에서 피정에 온 사제와 수녀들에게 ‘구름의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관상 기도란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믿음 -우리는 오직 이 믿음만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알 수 있다- 에만 온전히 초점을 맞추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한 피정에서 누군가가 토마스 머튼의 이와 같은 관상 기도 정의를 언급하면서 이 기도의 명칭을 향심기도로 바꾸자고 제안하였고 그때부터 이 기도를 향심기도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후반에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을 통해 구심기도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2000년대 초반 재미교포인 엄무광(1940~2011, 바트리시오) 형제에 의해 전해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28일(나해)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가톨릭마산 8면, 윤행도 가롤로 신부(월영본당 주임)]

 

 

[향심기도]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2)

 

 

“향심기도는 관상기도의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침묵기도입니다. 관상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계시며, 숨결보다 가깝고 사고보다 가까우며 의식 그 자체보다 가까운 하느님 현존을 체험합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이면서 그 관계를 촉진시키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향심기도는 다른 기도를 대체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기도에 깊은 의미를 더하며 능동적 기도 -소리기도, 정신기도, 정감적기도- 에서 하느님 안에서 쉬는 수용적 기도로 옮아가게 도와주지요. 향심기도는, 기도가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라는 것과 그것이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넘어서 그분과의 친교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향심기도의 원천은, 관상기도로 이끄는 모든 방법에서와 마찬가지로 내주하시는 삼위일체,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 향심기도의 초점은 우리와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이며, 향심기도의 효과는 공동체적입니다. 곧 이 기도는 믿음의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 구성원들을 상호 우정과 사랑 안에 결속시키는 데 이바지합니다.”(한국관상지원단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향심기도가 어떤 기도이고 어떻게 하는 기도인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왜 향심기도, 즉 관상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발달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세 가지 기본적인 욕구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0~2세쯤에 형성되는 안전과 생존의 욕구, 2~4세쯤에 형성되는 애정과 존중의 욕구와 힘과 통제의 욕구가 그것인데, 이 세 가지 욕구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원천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가지 욕구가 무의식(비의식)에 자리를 잡아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모든 에너지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느끼고 반대로 욕구가 좌절되면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분노, 슬픔 등의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라면서 욕구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그때마다 보상심리가 작용하여 욕구를 충족시켜 줄 그 무엇을 찾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참자아와 반대되는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아 일생 동안 우리의 삶을 좌우하게 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물건을 살 때 필요한 만큼만 사지 않고 항상 여유로 한두 개를 더 삽니다.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자라면서 형들이 제 것을 가져갔던 기억 때문에 제 것을 여유 있게 마련하고자 하는 욕구(안전과 생존) 때문입니다.

 

제가 부제였을 때 강론 실습 시간에 담임 신부님이 어떤 모습의 사제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각오, 즉 ‘사목강령’을 적게 하여 동료들 앞에서 발표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발표한 ‘사목강령’에는 무려 32가지의 결심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가위나 설 명절 때 사목위원들께 제 돈으로 선물을 해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심대로 사제로 서품된 후 제법 오랫동안 본당 사목위원님들께 명절 선물을 드렸었는데 향심기도를 하게 되면서 그렇게 하는 ‘숨은 동기’를 찾아보았더니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기 위함이었습니다(애정과 존중의 욕구).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칭찬받은 기억이 없어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고자 무의식적으로 어떤 행동들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거나 봉사라 하더라도 그 동기가 순수하지(정화되지) 못하면 그 일을 통해 영적으로 진보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게 됩니다. ‘숨은 동기’란 세 가지 욕구가 좌절되거나 완전히 충족되지 못함으로 인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써 우리의 의식이나 행동을 유발시키는 감추어진 동기를 말합니다. [2024년 2월 25일(나해)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8면, 윤행도 가롤로 신부(월영본당 주임)]

 

 

[향심기도] 향심기도란 어떤 기도인가요? (3)

 

 

힘과 통제의 욕구에 대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1~20년 전만 해도 시나 도 경계를 넘어갈 때 경찰 검문소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당신은 경찰관으로서 저에게 신분증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제가 현행범도 아니고 당신에게 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며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그런 권리가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면 경찰관이 ‘이놈 봐라!’는 표정을 지으며 차적조회를 하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이것저것 조사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저를 보내며 형식적인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저는 경찰관을 불러 세우고는 “이보세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게 했으면 정중하게 사과를 해야지 그게 뭡니까?”라며 따집니다. 경찰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안녕히 가입시더.”라고 말하며 거수경례까지 합니다.

 

언젠가 제가 자주 가는 피정집 수녀님들을 모시고 남해-창선대교를 건너가다가 검문을 받게 되었는데, 제가 여느 때처럼 하는 것을 보고는 수녀님들이 그냥 면허증 보여주면 금방 끝날 텐데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경찰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인데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위세 부리는 모습이 꼴사나워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숨은 동기’를 살펴보았더니 힘과 통제의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별명이 갈비였을 정도로 체구도 작고 약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이나 시달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힘을 길러 언젠가는 다른 아이들을 눌러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제로 서품되고 나니 제 뒤에는 가톨릭교회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 그것을 믿고 권력기관인 경찰에게 대들었던 것입니다. 

 

‘숨은 동기’를 찾아내고 난 뒤부터는 경찰관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운전면허증을 보여드리고 수고하신다는 인사까지 건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안전과 생존의 욕구, 애정과 존중의 욕구, 힘과 통제의 욕구는 우리의 내면(무의식)에 자리 잡고 앉아 한평생 동안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가치관 등을 통제하고 조정(지배)하는데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의 감정을 건드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좋았을 때, 사실은 그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세 가지 욕구 중 하나를 의식 속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감정 변화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음에도, 우리는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립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영적으로 점점 퇴보하게 됩니다. 

 

우리가 미사 중 참회 예절 때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하는 의미도 바로 그런 의미, 감정 변화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세 가지 욕구는 무의식 속에 있기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치유자이신 성령만이 그것을 치유하실 수 있는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가 관상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상기도 중에 일어나는 은총 중의 하나가 내적(무의식) 치유입니다. [2024년 3월 24일(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8면, 윤행도 가롤로 신부(월영본당 주임)]



70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