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1일 (금)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주교님 오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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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23 ㅣ No.614

[수녀원 창가에서] ‘주교님’ 오시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이날을 기다려

 

대림 시기에 수녀원에서 가장 훈훈한 깜짝쇼는 ‘주교님 맞이하기’다. 12월 6일은 수녀원에 ‘주교님’이 오시는 날이다. 주교님 맞이하기는 선배 수녀들이 수녀원의 초년생들(지원자 또는 청원자)에게 깜짝 즐거움을 주려고 마련한 것으로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놀이다. 대림 시기의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양성 자매들과 수녀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날을 기다린다. 수녀원의 상황을 잘 모르는 막내 그룹만 빼고 말이다.

 

성 니콜라오 주교 축일 아침에 수녀원 초년생들은 갑작스러운 임무를 받거나 뜻밖의 야외 일정이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그날만큼은 막내 그룹의 자매들이 수녀원 주방 쪽으로 출입할 수가 없고, 더러는 수녀원에 있지 못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선배 수녀들이 주교님이 오시는 날을 몰래 준비하는데 막내 그룹에게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날의 깜짝쇼를 몰래 준비하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인형 모양의 ‘예수님’ 빵을 굽는 것이다.

 

빵 굽는 냄새로 눈치를 챌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밖으로 내보내거나 주방에는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날 밤 주교님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오시는데, 그 안에는 재미있는 ‘예수님’ 빵이 푸짐한 간식과 함께 들어 있다.

 

막내 그룹의 자매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낮에는 외출했다가 저녁 식사 뒤에는 예쁜 옷이나 한복을 입고 장기 자랑을 준비하라는 갑작스러운 주문을 받는다. 저녁 8시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녀원의 모든 자매가 강당에 모여 앉아 주교님이 오시기를 기다린다. 강당도 멋지게 장식해서 손님맞이 환영식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니콜라오 주교님이 오시면

 

강당의 전등불이 꺼지면 이내 어둠을 뚫고 산타클로스 차림의 니콜라오 주교님이 보좌관들을 데리고 등장하신다. 깜짝쇼 준비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니콜라오 주교님으로 분장한 수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주교님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 인사를 하면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들은 수녀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린다. 깜빡 속은 막내 그룹의 자매들은 신이 나서 자지러진다. 놀이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니콜라오 주교님이 먼저 수녀원 방문 목적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양성 과정에 있는 자매들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 주며 안부와 더불어 수녀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자상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신다. 양성 자매들은 주교님의 질문에 기꺼이 응답하고 따뜻한 위로도 받는다. 이어 재능도 선보이고 재롱도 피운다.

 

주교님이 그들과 한참 담소를 즐기고 나면 커다란 자루를 풀어 선물이 가득 든 주머니를 한 개씩 나눠 준다. 선물 주머니를 열어 각자 자기 ‘예수님’을 보고 즐거워하며 이곳저곳에서 폭소가 터진다. 다양한 모양의 ‘예수님’이 아주 재밌게 생겼기 때문이다. 자기 ‘예수님’이 멋지다고 서로 자랑한다. 다양한 몸짓의 예수님 빵은 그날 제빵을 맡은 수녀님의 기술에서 나온다. 어떤 이들은 구수한 빵 냄새의 유혹을 못 이겨 곧바로 인형 빵을 먹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오랫동안 보관하기도 한다. 모두 어린이들처럼 각자의 ‘예수님’을 받고 흐뭇해한다.

 

이날의 깜짝쇼는 예수성심전교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초창기 시절 독일 수녀님들이 대림 시기에 수녀원에서 가장 어린 양성 자매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3-4세기에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미라(Myra)의 주교 성 니콜라오의 선행과도 결부된 것이기도 하다.

 

어느 가난한 아버지가 지참금 문제로 세 딸을 매춘부에게 넘겨야 할 어려움에 놓여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니콜라오 주교님이 세 번이나 그 집에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넣어 주어 세 자매가 정당하게 혼인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 니콜라오 주교님의 선행의 의미를 수녀원 안에서 실천했던 독일 수녀님들은 이제 모두 하늘 나라로 가셨다.

 

하지만 대림 시기에 ‘주교님 맞이하기’의 깜짝쇼는 아직도 본원과 양성소의 모든 식구가 수녀원 생활의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해 주는 신나는 놀이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녀원의 오락 시간

 

수녀원의 초기 양성 프로그램에는 오락 시간이 반드시 들어 있다. 수도 생활에서 오락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 자매들 간의 친교를 위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깨어 있는 삶을 살고자 긴장한 몸과 마음을 풀어 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양성소에서는 주마다 한 번 이상은 오락 시간을 가진다.

 

오락 시간에는 긴장을 다 풀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경험들이나 창의적인 생각들을 발휘할 수도 있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공동체 자매들 간의 갈등도 오락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풀리게 된다. 수녀원에 입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매들은 수녀원에서 신나게 노는 날이 있다는 데에 놀란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수녀원에 입회할 때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거룩하게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리라고 기대하며 온다. 그런데 수도 생활은 기도와 일 못지않게 공동체가 함께 어울리는 친교도 중요하다. 공동체의 친교를 통해 세상과 관계하는 법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오락은 수도자들의 정서에 매우 이로울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매애를 키우며 공동체에서 서로 힘을 얻게 해 준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수도자들은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며 함께 웃고 즐기는 단순 소박한 삶의 양식에서 풍요로움을 체험한다.

 

수녀원에서 즐겨하는 오락의 종류는 다양하다. 조용히 몰입하면서 하는 게임이나 신나게 떠들면서 하는 노래와 춤들도 있다. 더욱이 축일이나 수녀원의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그때마다 장기 자랑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대림 시기에 ‘주교님 맞이하기’는 양성 자매들이 함께 사는 수녀원 본원에서 연중행사가 될 정도로 으뜸가는 놀이다.

 

수녀원에 양성 자매들이 있는 한 챙기고 아껴 주는 마음을 알 수 있는 이런 좋은 놀이는 계속될 것이다. 선배 수녀들은 후배들을 기쁘게 해 주어서 좋고, 후배들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어서 좋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 - 예수성심전교수녀회 관구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전봉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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