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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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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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2 ㅣ No.1249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는 사랑과 용서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고, 변함이 없다. 선한 이에게나 악한 이에게나 하느님은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신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아버지를 닮아 사랑을 베푸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또한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얼마나 용서를 많이 하시는 분이신지 잘 알려 주셨다(루카 15,11-32 참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복음의 핵심 내용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로 줄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신다. 특별히 미사성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번번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로마 미사 경본」).

 

 

죄의 용서는 영혼의 음식

 

“음식에 대한 기도 다음 죄의 용서를 청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양육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살게 되며, 따라서 현세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도 염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도달하려면 먼저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복음에서 죄를 빚에 비유하십니다”(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22).

 

하느님 앞에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주님께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죄를 위해 기도하라고 재촉받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얼마나 은혜롭고 구원에 유익한 일입니까? 하느님께 관용을 청하는 동안 자기 양심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자신이 무죄한 자라고 만족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자만하는 자는 더 크게 멸망할 것입니다. 죄를 위해 매일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매일 죄짓고 있음을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주님의 기도 해설」, 22).

 

요한 사도도 서간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8-9).

 

“이 서간의 말에는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점과 기도를 통해 용서를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한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분명히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의 빚과 죄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다운 자비와 용서를 약속하신 것입니다”(「주님의 기도 해설」, 22).

 

 

조건문과 함께 엮어 가르치신 유일한 용서의 가르침

 

주님의 기도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가지 청원 가운데 오늘의 기도만이 유일하게 조건문과 함께 나타난다. “여기에는 우리 편에서 해야 하는 조건과 약속이 명확히 내포된 규정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것에 따라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죄를 위해 청한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위의 책, 23).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곧이어 남을 용서해 줄 때만 자신도 용서를 받는다는 가르침을 주님께서는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마태 18,35 이하를 보면 어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안 임금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자비롭지 못한 그 종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자, 그를 붙들어 당장 빚을 갚으라며 감옥에 가두었다.

 

안타까워하던 그의 동료들이 임금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임금은 그 고약한 종을 불러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했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임금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23-35).

 

동료에게 관용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주인으로부터 얻은 은혜마저 잊어버렸다. “남을 판단한 대로 판단받게 될 것이므로 심판 날에 핑계 댈 말이 없을 것입니다. 즉 다른 이들에게 행한 그대로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사랑하고 한마음과 한뜻을 가진 사람들이 당신의 집에 살기를 원하시고, 제2의 출생으로 새로 난 우리들이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주님의 기도 해설」, 23).

 

참고로 만 탈렌트가 얼마나 큰 금액일까? 예수님 시대 헤로데 임금이 일 년 동안 받는 돈이 900탈렌트였다고 하니 만 탈렌트를 모으려면 1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부족할 정도의 큰돈이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 일한 대가로 받는 품삯이었으니 백 데나리온은 그가 백일 동안 일해서 번 돈이다. 서로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국 돈으로 계산을 하자면, 만 탈렌트는 3조 6,144억 원이고, 백 데나리온은 602만 4천 원이다(장재명,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108 참조).

 

 

실천하기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훌륭한 용서의 가르침

 

주님께서 용서에 대해서 하신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알아듣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청원은 예수님께서 재차 강조하시고 해설까지 덧붙여 말씀하신 부분이다. 주님의 기도 끝부분에 마지막 청원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주님의 말씀이 뒤따른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치프리아노 교부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강조한다.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서로 한마음으로 있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머무를 수 없습니다”(「가톨릭교회 일치」, 112).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에서 제자들에게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할 때 형제가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바치라고 가르치셨다(마태 5,23 이하 참조).

 

“우리는 하느님의 자식들이니 하느님의 평화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한 성령을 받았으니 한마음과 한뜻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불목하는 자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명하십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희생 제물은 우리의 평화와 형제적 화목과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 안에 모인 백성입니다”(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23).

 

* 장인산 베르나르도 - 청주교구 신부. 원로 사목자로 강화꽃동네 성녀 헬레나 성당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지낸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교부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장인산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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