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4일 (월)
(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전례ㅣ미사

[전례] 숨겨진 보물인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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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3 ㅣ No.1636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숨겨진 보물인 성사 (1)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지난 주 “징표”에 이어서 오늘은 “밭에 숨겨진 보물”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하느님 은총의 가시적 표징인 성사(聖事, Sacramentum)의 뜻은 그 범위가 광범위하기에 인간의 단어로는 성사의 뜻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때론 인간의 언어로 한정짓기보다 비유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자주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저 역시 비유로 하느님 은총의 선물인 성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로 비유합니다. 평소 사람들은 그 밭을 자주 지나다니지만,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평소 사람들은 그 밭에서 자주 일하지만,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에 숨겨진 보물은 그저 쓸모없는 돌멩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봅니다. 많은 이들이 하찮은 돌멩이로 생각했던 것이 아주 귀한 보물임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사버립니다.

 

숨겨진 보물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인 성사와 같습니다. 그 보물이 숨겨진 밭은 “교회의 전례”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의 전례 안에 수많은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전례에 참여하지만 전례 안에 숨겨진 보물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밭에 습관적으로 오지만 그 밭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밭의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기에, 밭에 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은 여러 가지 표징들로 밭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보물인 은총을 전례 안에서 드러내는데, 그 은총은 표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 표징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물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인 성사, 이것은 감각적인 표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각적인 표징”은 장소와 그림, 말씀과 예식 그리고 여러 가지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표징은 표현하려는 대상의 본질과 깊이와 존재를 드러냅니다. 표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와 만나게 해주시기에 성부의 표징이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숨겨진 수많은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표징들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값진 보물은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17년 3월 26일 사순 제4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숨겨진 보물인 성사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표징을 교회 안에 마련하셨습니다. 장소적인 측면에서 성당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거룩한 곳입니다. 성당은 하느님께 봉헌된 곳이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축성된 공간으로써, 아름다운 표징들로 장식됩니다. 이러한 장소는 우리의 모든 감각이 하느님의 은총을 향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성당의 문턱을 넘어서는 모든 이는 이곳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 삶에 필요한 은총과 축복, 도움과 위로를 받습니다.

 

성당은 순례의 길을 걷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쉼터”이며 “하늘의 거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당에 들어갈 때 바로 들어가지 않고, 성수로 성호경을 그으면서 곧 이루어질 거룩한 만남을 준비합니다. 성당에 들어서기 전 성수기도를 바치는 찰나의 순간은 우리가 거룩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깨우쳐 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다른 중요한 표징으로 “제대(祭臺, Altar)”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다른 종교들과 유대교에도 제대가 있었으며, 그 위에서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쏟아 붓거나 태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제대 위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제대는 구약의 제대와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새로운 제대가 되었으며 살아있는 돌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대를 축성할 때 성유를 도유함으로써 제대는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하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희생 제사의 기억을 기념하기 위해 매일 제대 주변으로 모이고, 그곳에서 생명의 빵을 나누며 친교를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제대는 모든 전례의 중심이며, 구원의 은총이 흘러나오는 구원의 샘이 되었습니다.

 

또다른 중요한 표징으로는 “빵”이 있습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풍족해서, 과거 “빵과 쌀”이 가졌던 주식으로써의 중요성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서양인이나 동양인에게 “빵과 쌀”은 일용할 양식이자 거룩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라고 말씀하시며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빵”을 거룩한 표징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빵을 쪼개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온 인류가 속죄된 것처럼, 성찬례에서 “쪼개어짐”을 통해 무한히 나누어져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도록 당신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전례 안에서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하고, 빵의 형상을 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십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는 매일 빵의 표징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며 친교를 이루어 나갑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다양한 ‘감각적인 표징’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주십니다. [2017년 4월 2일 사순 제5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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