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이시임 안나의 순교 이야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30 ㅣ No.1299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주님을 따르다 겪는 아픔


이시임 안나(1782-1816)의 순교 이야기



하느님을 믿으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좋은 일은 커녕 더 괴롭고 아픈 일을 당해 눈물을 흘려야 했던 기억은 없는가? 그런 때 하느님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던가? 하느님을 믿고 따르다 겪은 순교자 이시임 안나의 기구한 운명은 참으로 가슴 아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삶을 통해 지금 울고 있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신다.

재색을 겸비한 처녀로 주변의 관심을 끌었던 이시임 안나는 충청도 덕산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디 천주교 집안이 아니었으나 그녀는 천주교를 믿게 된 후 열성적으로 교리를 실천하며 일생 동안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였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 동정녀 공동체로 가던 중 박씨 뱃사공과 강제로 혼인을 하게 된 아픔이 있었다. 이듬해 둘 사이에서 아들 ‘종악’이 태어났으나 몇 해 되지 않아 남편이 죽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과부가 된 후에도 그녀는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고자 아기를 데리고 경상도 진보 머루산의 교우촌으로 들어가 살았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으니 그때가 1815년이었다. 안동진영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다시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 형벌을 받았으나 그녀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었다.

옥살이의 고초를 겪는 동안 감옥 안까지 함께 온 4살 된 종악이가 엄마 품에서 죽는 큰 아픔을 겪었으나, 그녀는 천국에 일찍 오른 아들의 운명이 복되다고 생각되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아직 철도 들지 않은 이 아이는 엄마와 함께 굶주림의 괴로움을 느꼈고 그 여파로 죽었던 것이다. 1816년 12월 16일, 이미 다섯 명의 남자들이 모두 참수된 후에 관장이 남아 있던 두 명의 여자에게 배교를 권했을 때 안나는 대답했다. “관장님 말씀대로라면 남자들은 하느님을 공경해야 하고, 여자들은 공경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관장께서 법대로 저를 다루시길 빕니다.” 그녀는 여인이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의 큰 아픔들을 다 겪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순교의 영광을 택하였으니 당시 그녀의 나이는 35세였다.

순교자 이시임 안나님! 저희도 주님을 따르다 겪는 아픔들이 오히려 신앙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도록 주님께 빌어주소서.

[2014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교황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1,92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