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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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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06 ㅣ No.727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소통의 한계



작 - 데이빗 그레이그 / 번역, 연출 - 이상우 / 명동예술극장(14. 4. 16 ~ 5. 11)

페이스북, 트위터, 마이피플, 인스타그램?얼굴을 향해 지저귀는 나의 사람들의 간편한 사진 이야기.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영 생경하다면 당신은 소통의 시도조차 아예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발언의 공간은 확대되었고 정보는 끝간데 모를 ‘바다’가 되었다”고 현대 사회를 진단한 바 있다. 동의한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소통의 통로가 다양해지고 발언의 기회가 열렸다는 것이 그만큼 올바로 상대와 통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SNS의 발달로 인한 발언의 확대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이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가려운 곳이 어딘지 긁어 줄 수 있는 사이가 있단 말이다. 분명 ‘나와 너’ 사이에는 어지러운 말을 능가하는 그 무엇이 존재할 수 있다.

무대 뒤로 쏟아지는 별 빛. 그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 12년 째 지구와 통신이 끊겨 버린 우주선 ‘하모니 114’가 있다. 그 우주선 안에는 12년 째 동거동락 중인 ‘올레그’와 ‘카시미르’가 집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계속해서 지구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영국 에딘버러에 사는 부부 ‘이언’과 ‘비비안’은 송신이 잘 되지 않아 일그러진 화면만을 보이는 티비를 함께 바라보고 앉아 있다. 서로를 향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니 말은 말인데 대화는 아니다. 상대방에게 가서 닿지 못하는 말들. 그리고 어느날 남편 ‘이언’은 아무 말 없이 돌연 사라져버린다.

구소련 출신의 ‘나스타샤’는 배우를 꿈꾼다. 그녀의 현실은 런던의 어느 클럽의 무희. 가만히 보니 그녀는 ‘하모니 114’에 타고 있는 ‘카시미르’의 딸. 저 하늘 넘어 어디선가 내려다 보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며 고단한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하늘 위에 두 사람.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두 사람.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 이 세 개의 커다란 플롯은 서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 같지만 기묘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일관되게 객석을 향하는 것은 서로에게 가 닿지 못하는 소통의 한계를 무대 위 형상을 통해 전달한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가서 닿아야 할텐데, 가장 쉬운 소통의 방법인 ‘말’은 이미 힘을 잃은지 오래다.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탓이 아니라 올바로 듣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외로우니까 사람’이라지만 외로움이 깊은 탓이려나 주고받는 말들 사이에서 존재는 그 어느 곳에도 단단히 정박하지 못하고 말들 사이를 떠돌며 부유한다. 그리하여 존재는 또 다시 고립되고 그 고립으로 인해 외로움은 재생산되고 확대 생산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다른 언어를 발설하는 관계 사이에서 소리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가 닿는다. 물론, 의미 단위의 신체언어, 음성언어, 문자언어 ? 몸짓, 소리, 문자가 가서 닿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마음이 포개어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법은 아닐까. 움직임 없이, 소리 없이, 말 없이 고요하게 우리 마음에 다가오시는 방식은 아닐까. 그 마음에 오늘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가만히 들여다 보아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라서,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서,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 아니라서 더더욱 날을 벼려 날카롭고 예민하게 각자의 마음을 살피고 또 돌아 볼 일이다.

*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2004년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재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6월 1일,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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