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연중 8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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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2 ㅣ No.393

연중 제 8 주일 (나해)

        

        호세아 2,16ㄴ.17ㄴ.21-22       2고린토 3,1ㄴ-6       마르코 2,18-22

    

      2003. 3. 2.

       

주제 : 현실을 올바로 깨달음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3월에 들어선 만나는 첫 번째 주님의 날, 연중 8주일입니다. 이제는 봄을 노래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에 따라 태양은 어김없이 남쪽으로 기울어지기를 끝내고 다시 북쪽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추운 겨울은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고,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하여 산으로 들로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 때가 되더라도 삶의 정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보살핌을 떠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잘못 살아가는 대표적인 일의 한 가지는, 삶에 여유가 생기거나 헤쳐 나가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봉헌하고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 안에서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신상의 여러 가지 핑계를 내세워 자신이 하는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일입니다.

 

너나없이 바쁜 세상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올바로 깨닫고 사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는 일은 딴 사람이 우리에게 큰소리로 이야기해주어야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큰소리로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너나 잘 살아!’라는 반응으로 무시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반응을 경험하게 되면 그나마도 좋은 마음으로 움직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의기가 꺾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모두 반응하며 사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 일에는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도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좀 더 크게 보고 잘 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야기합니다.  내가 온갖 정성을 모아 계획하고 움직인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올바른 태도와 마음가짐 위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현실을 올바로 깨닫지 못했던 일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단식문제’로 시비를 겁니다. ‘누구와 누구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 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말 표현은 스승을 뺀 듯하지만, 제자들이 형편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니 스승인 당신도 과연 올바른 사람이겠느냐고 묻는 비아냥거림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럴 듯한 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을 드러내어 자기자랑을 하는 것이기에,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현실을 올바로 봐야 한다고 꼬집어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인간적인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쉽사리하는 일처럼 생각나는 대로 판단하고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러시면서 ‘찢어진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덧대는 비유, 낡은 술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고 편들어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한 단계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판단대로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과 어떻게 호응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결국 삶은 내가 가진 생각대로 움직이고 시작하는 것이지만, 그 삶에 대하여 선악의 판단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내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몫이라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헛갈릴 때 사람의 생활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고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잘못된 길을 다른 사람도 따라야 한다고 우기는 일이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겠습니까?

 

삶에서 일부러 잘못 행동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들 각자가 가진 욕심이 겉으로 드러날 때입니다.  ‘헌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도 아무런 문제없을 거라고 믿는다든가 헌 가죽부대에 새 술을 넣으면서 술이나 가죽부대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다’는 억지주장을 펴고 싶을 때 문제는 발생하고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현실에서 그 경험을 하신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 경험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그 경험을 이야기해주어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욕심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이 고집을 부리고 비뚤어진 길로 나가겠다고 우긴다면,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분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서로를 상대방에게 주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부부관계’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이야기 하십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본성이 변할 수 없음을 호세아 예언자는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주변의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면, 내가 내 곁의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으려고 시간을 투자하고 행동하는 그만큼만 하느님과 나의 관계에서 드러낼 수 있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드러내는 일이 이러한 방법으로 쉬워진다면, 하느님은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무조건 두려워하여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분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부려 높은 담을 쌓거나 내가 먼저 등을 돌려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새로운 봄을 알리는 3월의 첫 번째 주간을 지내면서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우리의 마음과 하느님을 향하는 자세도 따뜻해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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