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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교회사 공개대학4: 파리외방전교회 한국 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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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4-12 ㅣ No.610

한국교회사연구소 상반기 공개대학 특강 지상중계 (4) 파리외방전교회 한국 성인들

 

 

조현범 박사가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성인들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성인공경 어떻게 해야 할까

 

성인 공경의 첫 번째는 성인의 모범을 따라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분들 생애를 잘 알아야 한다. 교회가 공인하는 성인전을 열심히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중세 유럽에서는 성인전을 읽거나 성해를 공경하는 일이 활발히 일어났다.

 

예수와 사도, 성인들 생애와 행적에 관한 기록을 묶은 「레젠다 아우레라」(Legenda Aurera)는 1260년대 최대 베스트셀러였다. 성인전은 신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또 신앙생활을 북돋우는데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성인에 대해 공경을 표현하는 방식들 가운데 또 한 가지 두드러진 것은 성해 공경 관습이다. 성해 공경은 상상력을 가져다주는 중요 매개체였다. 성해는 신앙을 견고하게 하는데 쓰이는 교재 내지 수단인 것이다.

 

 

기해박해 순교성인들(3위)

 

*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Laurent Imbert, 1796~1839)

 

한국성명 범세형. 1819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이듬해 중국으로 떠나 전교활동 중 제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 1837년 12월 17일 조선 입국하며 조선 땅을 밟은 첫 주교가 됨. 이미 입국한 모방, 샤스탕 신부와 함께 왕성한 전교 활동 펼침.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도 힘쓰며 신자들을 선별해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침. 1839년 9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모방 베드로(Pierre Maubant, 1804~1839)

 

한국성명 나백다록. 1829년 사제품을 받고 1831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32년 중국 선교사로 파견됐으나 도중에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만나 조선 선교사로 자청. 1836년 1월 조선입국.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프랑스 선교사. 김대건ㆍ최양업ㆍ최방제를 신학생으로 선발해 마카오로 보냄. 1839년 9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샤스탕 야고보(Jacques Chastan, 1804~1839)

 

한국성명 정아가백. 1827년 사제품을 받고 그해 4월 페낭으로 떠남. 1833년에는 마카오에서 활동 중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조선 선교사 자청. 1837년 1월 조선 입국.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와 함께 전교 활동. 1839년 9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병인박해 순교성인들(7위)

 

* 성 베르뇌 시메온(Simeon Francois Ber neux, 1814~1866)

 

한국성명 장경일.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 1837년 사제품을 받고 2년 뒤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41년 베트남에서 전교하다 2년간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에서 10년 넘게 활동. 1854년 주교가 됐고 이듬해 조선교구장으로 임명. 1856년 조선에 입국. 배론에 한국 최초로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인쇄소를 세우며 한국 교회 발전에 큰 공을 쌓음. 1886년 3월 7일 군문효수로 순교.

 

* 성 다블뤼 안토니오(Antonie Daveluy, 1817~1866)

 

한국성명 안돈이.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1841년 사제품을 받고 184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44년 중국으로 선교 떠남.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페레올 주교 요청으로 1845년 조선에 입국. 21년 간 조선에서 선교사로 활동. 조선교회사 및 순교자 역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해 직접 역사서 집필. 「한불사전」을 편찬하고 「영세대의」 등 많은 책을 번역.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가 순교한 뒤 23일간 조선교구장 직을 맡음. 그러나 곧 체포돼 3월 30일 갈매못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오매트르 베드로(Pierre Aumaitre, 1837~1866)

 

 한국성 오. 1862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6월 조선에 입국. 경기도 용인 손골에서 한국말을 배운 뒤 충청도 홍주 거더리에서 전교 활동. 1866년 3월 베르뇌 주교가 체포돼 피신하려고 다블뤼 주교와 배를 탔으나 폭풍이 불어 실패. 다시 거더리로 돌아와 자수하여 체포. 3월 30일 갈매못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위앵 루카(Martin Luc Hiun, 1836~1866)

 

한국성 민. 1861년 사제품을 받은 뒤 선교사 사명을 느끼고 186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65년 조선에 파견됨. 충청도 내포에 머물면서 다블뤼 주교에게 한국말을 배운 뒤 홍주 황무실에서 전교활동. 1866년 3월 12일 체포돼 갖은 고문을 받다 3월 30일 갈매못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볼리외 루도비코(Bernard Louis Bea ulieu, 1840~1866)

 

한국성명 서몰례. 1862년 부제품을 받은 뒤 이듬해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864년 사제품을 받은 동시에 조선 선교사로 임명. 1865년 5월 조선에 입국. 경기도 광주에 머물면서 조선말을 배우며 전교활동을 펼침. 1866년 2월 체포돼 3월 7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도리 헨리코(Henri Dorie, 1839~1866)

 

한국성은 김. 1864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5월 조선에 입국. 경기도 용인 손골 지역에 머물며 사목활동을 펼침. 1866년 2월 배교자 밀고로 체포돼 3월 7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

 

*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Just Ranfer de Bretenieres, 1838~1866)

 

한국성은 백. 프랑스 디종 출신으로 남작가문 후손. 1861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 1864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5월 조선에 입국. 서울 정의배 회장 집에 머물면서 전교에 힘씀. 1886년 2월 체포돼 3월 7일 군문효수로 순교.

 

 

파리외방전교회 순교성인들이 던져주는 묵상 주제들

 

(1) 자식을 선교사로 떠나 보내던 부모의 심정

 

파리외방전교회 한국 성인들 전기를 지은 작가들은 하나같이 성인의 어린 시절에 부모들이 보여줬던 모범과 헌신적 신앙 교육을 지적하고 있다.

 

성인들이 선교사를 자원해 조선으로 떠나는 모범을 강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돈이나 명예, 학벌, 사회적 지위보다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일깨워 주려 노력한 부모들 신앙 교육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2) 아홉 달의 사목과 순교가 지닌 무게에 대한 묵상

 

병인박해 당시 가장 나이가 어렸던 20대 신참 선교사들, 즉 위앵ㆍ볼리외ㆍ도리ㆍ브르트니에르 성인이 실제로 조선 땅에서 사목활동을 펼친 기간은 조선말 배우는 기간까지 다 합쳐도 9달 정도다. 특히 볼리외 성인은 순교할 당시 나이가 26살이었다.

 

어쩌면 이 성인들 성덕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대 중반의 새파란 나이에 무엇을 알았겠는가. 시대 분위기에 휩쓸려 선교사를 자원했고 때마침 몰아닥친 피바람 속에 그다지 일다운 일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바로 이 것이 우리 묵상과 성찰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과연 성인의 업적이나 성덕이 수량적으로 환산되는 것일까. 반드시 많은 일을 이뤄야 성인이 될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것일까.

 

성인들의 극적 선교활동이나 영웅적 순교 장면만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짧은 세월이지만 끊임없이 조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조선 교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려고 애썼던 모습,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남긴 묵상 내용들, 예수님을 향한 헌신의 정신은 성인들이 지상에서 어떠한 공을 세우지 않았다해도 성인으로서 공경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평화신문, 2009년 4월 12일, 정리=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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