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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교회사 공개대학3: 다시 보는 시복식과 시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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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4-12 ㅣ No.608

한국교회사연구소 상반기 공개대학 특강 지상중계 (3) 다시 보는 시복식과 시성식


1984년 5월 6일, 순교자의 땅에 103송이 꽃이 피다

 

 

- 한국교회사연구소 양인성 연구원이 시성식과 시복식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 시복

 

(1) 교황청 심사 및 시복 확정

 

- 교황청은 1905년 7월 26일 한국 교회에서 보낸 「기해ㆍ병오박해 시복 조사 수속록」 내용을 심의한 후, 1910년 7월 '교황청 수속의 유효성'을 발표.

 

- 1921년 추기경 회의 첫 단계인 전(前) 예비회의, 1923년 3월에 예비회의 개최.

 

- 1924년 3월 18일 순교 사실과 기적에 관해 심의하는 추기경 본회의를 개최. 본회의에서 82명 가운데 17명이 증거 불충분으로 특별위원회에 회부.

 

- 1925년 4월 29일 열린 특별위원회에서 17명 가운데 14명 순교 사실을 인정. 그러나 정 아가타, 한 안나, 김 바르바라 제외.

 

- 1925년 5월 10일 어전회의에서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기적 심사 면제령과 79위 시복 확정.

 

(2) 한국 교회 대표단 파견

 

- 뮈텔 주교와 드망즈 주교 : 1925년 3월 17일 로마로 출발, 6월 17일 도착.

 

- 한기근 신부 : 한국 성직자 대표로 시복식에 참가. 1925년 5월 11일 경성역 출발해 6월 30일 로마 도착. 교황에게 전할 조선 사제들과 경성교구 청년들 편지를 갖고 감.

 

- 장면ㆍ장발 형제 : 장면 박사는 1925년 5월 10일 경성교구 천주교 청년회 연합회에서 시복식에 참석할 대표자로 선발됨. 동생 장발과 함께 7월 1일 로마 도착.

 

- 기낭 신부 :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장. 1925년 당시 몸이 좋지 않아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중 뮈텔 주교를 만나기 위해 로마로 왔다 시복식에 참석.

 

(3) 시복식을 위한 준비

 

- 파리외방전교회 로마 대표부에서 순교자들 행적을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번역. 복자들 상본 인쇄해 배포.

 

- 7월 4일 뮈텔 주교, 드망즈 주교, 기낭 신부, 한기근 신부가 교황 알현. 이 때 뮈텔 주교는 황사영 백서를 증정하고 한기근 신부는 자신이 가져간 사제들 편지를 올림. 교황은 한국 교회 거룩한 사업과 모든 성직자와 교우들에게 강복.

 

(4) 승리와 영광의 날 : 79위 복자 탄생

 

- 1925년 7월 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시복식 때 베드로 대성전에 걸렸던 79위 복자화.

 

 

- 1925년 7월 5일 오전 10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식 거행.

 

- 미사에 참례한 복자 가족 및 친척이 없었기에 기낭 신부, 한기근 신부, 장발이 복자 가족을 대신함.

 

- 고위 성직자가 교황이 한국 순교자 79위를 복자를 선포하는 교황령 낭독 - 복자들 상본을 가렸던 베일을 제거하고 유해 제대에 현시, 성가대가 테 데움 합창.

 

- 주교 장엄 미사 거행.

 

- 교황 비오 11세가 참석한 성체강복. 성체 강복은 원래 교황이 거행하지만 교황이 특별 은혜를 내려 뮈텔 주교가 직접 거행.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

 

(1) 시복 과정

 

- 1952년 3월 2일 교황청이 한국에서 보내온 자료 유효성을 인정.

 

- 1962년 11월 10일 한국 주교단이 교황에게 하느님의 종 26명이 병인 순교 100주년이 되는 1966년에 시복될 수 있도록 청원.

 

- 1964년 푸르티에 신부 제외.

 

- 1967년 1월 10일 프티니콜라 신부 제외. 하느님의 종은 24위로 줄어듦.

 

- 1968년 2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가 24위 순교 사실을 인정. 7월 4일 의원추기경과 주교들의 회의에서 교황이 기적 심사 면제령 반포.

 

- 1968년 10월 3일 시복식 참석을 위해 한국 순례단(로톨리 주한 교황대사, 김수환 대주교, 노기남 대주교, 장병화 주교와 순례단 단장 유봉준 신부 등 13명, 수녀 2명, 신자 118명)이 로마로 출발.

 

(2) 복자 24위 탄생

 

1968년 10월 6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시복식 때 베드로 대성전에 걸렸던 24위 복자화.

 

 

- 1968년 10월 6일 오전 10시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식 거행, 한국신자 500여 명 참석.

 

- 김수환 대주교가 한국어로 장엄미사 집전.

 

 

103위 시성식

 

(1) 시성 준비

 

- 1975년 9월 13일 전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이하 평협)는 103위 복자의 시성을 위한 후원 활동과 현양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

 

- 1976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한국 주교들 연명으로 작성한 103위 복자들의 시성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 김남수 주교를 시성 추진 책임 주교로 선출.

 

- 1978년 4월 13일 시성건을 시성성에 정식으로 접수.

 

- 1980년 7월 17일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준비위원회는 시성 추진을 200주년 핵심사업으로 전개.

 

- 1982년 11월 19일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을 알현해 200주년 기념행사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동시에 시성식을 거행하길 요청하는 주교단 의사 전달.

 

- 1983년 3월 24일 주교단이 '기적 관면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 6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적 심사 관면 허락.

 

- 1983년 9월 27일 교황은 103위의 시성을 승인 선포.

 

- 1983년 11월 7일 시성성은 한국 순교 성인 축일 명칭을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로 결정했음을 한국주교단에 통보.

 

(2) 순교자의 꽃이 피다 : 103위 시성

 

- 시성식은 관례에 따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것이 원칙. 그렇지만 한국 103위 시성식은 이례적으로 서울 여의도에서 거행.

 

-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시성식 거행.

 

-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 교회를 대표해 환영사 낭독.

 

- 모방 신부 고향 바이외 에 리지외 교구장 장 바드레 주교가 프랑스 성직자를 대표해 환영사 낭독.

 

- 교황이 한국어로 시성식 주도.

 

- 시성 예절 진행 : 김수환 추기경의 시성 청원 → 103위 약전 소개 → 모든 성인들의 호칭 기도 → 교황이 시성 청원을 허락해 줄 것을 하느님께 간구함 → 교황의 시성 선언문 낭독 → 김수환 추기경이 시성 선언에 대해 감사하며 시성에 관한 교황 칙서 청원 → 교황의 수락.

 

- 시성 예절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감사의 표시로 대영광송을 노래.

 

[평화신문, 2009년 4월 5일, 양인성 연구원, 정리=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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