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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기초공동체를 위하여2: 2부 모듈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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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9 ㅣ No.78

기초공동체를 위하여 : 1강 기초공동체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2부 모듈의 개요

 

지난 호에서 소개한 모듈은 장기 사목계획의 일부이며, 여기에서는 모듈1 ‘사귐의 영성’을 드러내는 단기성 계획 프로그램을 소개하려고 한다. 모듈1의 소개에 앞서 다시 한번 모듈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모듈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기로 한다.

 

 

1. 머리말

 

생활과 신앙이 하나로 접목되어야 신앙생활이 되듯이 교회의 삶이 따로 있고 그에 수반하는 사목활동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한마디로 사귐의 신비이며, 교회는 그 사귐의 신비를 동시에 드러내는 영성을 살아야 한다. 모듈1에서는 교회가 사귐의 신비에 도달하려는 목표에 나아가기 위한 계획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이러한 과정은 교회의 뿌리가 되는 기초공동체부터 먼저 실천되어야 한다. 교회의 기초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모듈1에서는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합의를 이루고 일치에로 나아가기까지 노력하고 포용하여 성숙한 관계로 합일을 이루어 가는 과정 전체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사귐의 신비를 이루기 위한 사목계획을 수립하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목적이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목적에 응답하는 것이다. 즉 그 목적이 타당하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고 적절한 방법을 동원하여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가 사귐의 신비라는 것이 재천명되고 교회는 이것을 세상에 보여주도록 불림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최후의 만찬 때 사랑의 보편성을 통하여 인류가 일치해야 한다(요한 17장 참조)고 말씀하셨다.

 

결국 사귐의 영성은 유기적이고 계획적인 공동체적 덕행을 필요로 하며 바람직한 일치 안에서 모두를 하나로 통합시킨다. 모듈1의 경우에 사귐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효율적인 사귐을 할 수 있도록 의식화하는 것이다. 사귐을 위한 모든 사도적 활동은 영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영성이란 체계적인 훈련과 노력의 준비를 바탕으로 길들여지고 얻어지는 것이기에 영성에 도달하는 것은 사목계획에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사귐의 영성은 다른 영성처럼 하느님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이루게 되는 여정이다. 그래서 이 여정은 계획되어야 한다. 계획되어야 한다는 것은 도달에 이르는 여정에서 역동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계획은 사목자와 하느님의 백성이 합의를 이룬 계획일 때 효과적으로 협력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되고, 비록 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점이 있다면 다음 계획에 제안이 되어 진정한 다양성이 반영될 때 일치라는 대통합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교회의 소명인 일치와 부합되며 성성으로 나아가는 단계이며 덕행의 한 부분이 된다.

 

 

2. 우리의 사목적 상황

 

1) 사목적 분열

 

모듈을 제안하게 된 첫 번째 동기는 대부분의 사목자들이 본당을 거쳐가는 동안 일치된 활동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사도적 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적 활동에서는 효율성과 일회적 단기성 추진으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목분야에 열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목표 도달보다는 즉흥적이고 일시적 요구에 따르는 활동을 펴고 있다는 뜻이다.

 

교리 프로그램 역시 교육적이기보다는 교훈적이다. 그밖에 사목활동은 복음선교와 일상생활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성사적 관습을 보존하는 데 치우쳐 있다. 즉 전례나 성사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또한 선교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

 

교구 사목방침과 제안이 있긴 하지만 사목활동이 무계획적이다. 이런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목계획이 아니다. 다양한 활동을 위해서 정해진 시간이나 담당자를 명시하거나 설정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과정이나 수단이나 창의력 등에 소홀히 하고 있다. 사실 효율성을 따지기는 하나 계획성 없이 즉흥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사목 활동은 전적으로 사목자 자신의 지성과 의지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많은 분야에서 일치에 대한 열망과 일치에 대한 여건 조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물론 우리가 결정하는 어떠한 공동결정에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동제안에 무관심했다가 마지못해서 받아들이는 경우나 그 이유가 사리에 맞지 않는 경우는 비관이나 불신 그리고 고립을 체험하게 되고 비효율성과 분열은 독선적 태도와 영성적 무감각을 낳는 절망감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종종 시도할 만한 가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2) 의미를 다르게 사용함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언어가 다르거나 학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통용어를 사용하지만 각자의 사고 방식과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공동체, 복음화, 영성, 사목계획, 교회, 공동체 등과 같은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년에 걸쳐 혼동을 일으키는 소공동체의 의미는 기초공동체와 구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정확한 개념을 알지 못함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렇게 공통용어가 바탕이 되어야 그 용어와 개념이 일치하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방식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함께 걸어가도록 하는 최소한의 소속감과 관련성이 없다면 일치를 이루기는 어렵다.

 

3) 통합성 결여

 

교회가 수년 간 체험해 온 변화과정, 즉 교구와 본당 조직에서 새로운 학문(유전공학, 배아복제 등)이나 조직(교구나 본당조직 개편)의 변화에 대하여 교회의 체계적인 전달 차원에서 적절한 지침과 지시를 추구해 왔다. 새로운 지식의 등장은 특수분야를 전공하도록 요구하고 이것을 식별해 주는 것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교구에서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나 본당에서는 전혀 준비되지 않는 일이나 전달 사항들은 많은 이중성을 야기하게 된다. 교의, 영성, 사목직에 있어 통합되지 못한 부분들이다. 이것은 개인에게나 공동체에게나 적절한 발전을 위하여 통합될 필요가 있다. 효율적 통합은 조화와 일치에로 나아갈 수 있으며 통합은 일치에로 나아가는 보증이며 지주이다.

 

효율적인 통합은 교회의 가르침을 삶을 통하여 드러낼 수 있고 메시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영성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영성은 교회가 교회로서 성장의 여정을 살아가게 한다. 우리는 교회 구조와 인간문화 사이에서 생겨나는 괴리를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즉 다음의 문제들을 직면해야 한다.

 

- 교회에 대한 소속감 결여

- 크리스천 공동체의 일치를 유지시키는 사회적 조직구조 부재

- 전체로써 모두를 복음화

- 유기적인 사목활동

- 평신도들에게 위임된 사도직 증가

 

4) 영성의 위기

 

영성이 부재한 사목계획은 일치와 사귐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며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한다. 영성과 사목계획을 적절하게 관련시키는 계획수립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사귐의 신비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영성은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 사목계획에서 영성의 부재 현상은 영성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영성이 없는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집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5) 계획수립에 있어서 중요한 사목적 선택들

 

(1) 사귐의 영성이 교회의 본질인가?

 

교회를 사귐의 신비로 정의한다.(공의회 문헌, 하느님의 백성1, 2장 참조)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신자들과의  만남의 신비로써 교회 자체를 재발견한다는 것은 자신의 양심을 회복한 것이며 가시적이고 영성적인 실체로 이루어진 신비이며, 교회 자체를 하느님과의 사귐으로 보아 교회는 사랑으로 쇄신되어야 하고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성과 욕망을 느낀다.(교황 요한 바오로 6세의 칙서 〈당신의 교회〉 참조)

 

(2) 사귐의 영성은 덕행을 요구하는가?

 

어떤 영성이든 덕행을 필요로 한다. 덕행은 영성을 육화시키고 가시화 하도록 도와주는 노력과 방법들이다. 사귐의 영성도 교회를 공동체로 만드는 모든 사람을 일치시키는 노력과 방법을 요구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영성의 노력과 방법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 노력들이 사귐을 위하여 조정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와 세상의 선익을 위해 봉사하는 공동노력이 더 필요하다. 대화, 식별, 화해, 공동활동 등과 전례를 통해서 드러난다. 전례는 사귐의 신비를 드러내는 공동의 축하예식이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은 공동 은총이시며 공동 소유이고 공동 희망이시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일치, 즉 성삼위의 일치 안에서 함께 성장하기 위하여 교회의 공동 양심을 이루고 공동선을 위한 공동결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과 방법을 필요로 한다.

 

(3) 직관적인 방법 외에도 기술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가?

 

사목계획에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실성 없는 관례나 법규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성서나 신학에 없는 기술적인 방법도 동원되어야 한다. 사회심리학, 경영관리학, 구조조정 등 하느님의 선물인 은총의 수혜자들이 그들 나름의 존재 양식과 활동 양식 그리고 열망과 요구들과 장애와 가능성을 이해하려고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된다. 수혜자들의 현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육화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술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주관성을 극복하고 계획하는 모든 일에 객관성을 높여 줄 것이다. 그러므로 발전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살아가는 원리와 가치에 일치하는 계획이 근본적인 원칙에 충실한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과학적인 방법을 받아들이는 엄격한 적용이야말로 다수의 사람들이 원한다고 받아들이는 무분별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4) 문제해결을 위한 타협인가? 아니면 미래에 기초한 방법인가?

 

시대의 징표를 읽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나 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기초를 두는 것이다. 성서적 여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하느님이 교회와 인간을 통하여 시작하신 것을 실행하도록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헌신하는 희망이다. 메시아의 희망과 종말을 맞이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가망성 있는 미래에 희망을 두는 것이다.

 

 

3. 모듈을 시행하는 목적

 

교회의 본성인 사귐의 영성을 드러내고 유기적인 사목이 되도록 하며 효과적으로 공동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며 공의회 정신에 부합하도록 추진하는 데 있다.

 

[월간빛, 2002년 11월호, 이용호 가브리엘 신부(본지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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