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강론자료

2019-01-06.....주님의 공현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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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9-01-04 ㅣ No.2282

주님의 공현 대축일(가나다해)

이사야 60,1-6;      에페소 3,2-3.5-6;      마태오 2,1-12

2019. 1. 6. (주일). 이태원

주제 : 하느님께 바치는 선물

오늘은 공현대축일입니다. 공현(公顯)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의도를 알고서 미리 준비한 사람들에게 하신 일도 아니고, 삶에 바쁜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갑자기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공현이나 공현사건이라고 말할 때, 하늘의 징표를 보고 찾아온 이방인들이 페르시아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와서,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봉헌한 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로마제국과 그 동쪽에 있던 페르시아인의 파르티아제국이 정치적인 긴장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마태오복음서는 아주 평범하게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기록하지만, 그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공현대축일을 말하면서 갖출 자세는 그 일이 진짜인지 혹은 가짜인지를 묻는 차원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어느 개신교인인 학자가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학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동방박사의 방문이 가능하게 한 하늘에 나타난 별의 움직임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에 따라서 듣는 사람이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나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들이 살던 지역을 통치하는 임금이었던, 헤로데에게로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아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묻습니다. 헤로데는 자신이 다스리던 땅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두려움과 위협을 느꼈을 것이고, 결국 그 두려움은 죄가 없는 어린이들의 순교라는 또 다른 일을 만듭니다.

 

헤로데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했던 말과는 다르게, 예수님께 경배하러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날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헤로데는 움직이지 않았고, 동방박사들이 먼저 가서 경배하고, 그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 움직이겠다고 말했습니다. 움직이지 않은 헤로데를 보면서 우리가 흥분할 이유는 없습니다. 헤로데가 산 자세와 우리가 사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헤로데가 보인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그가 드러낸 모습이 우리가 드러내는 모습보다 좋은 것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암흑을 헤매는 세상일 것입니다. 헤로데의 행위를 좋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표현인 지행합일(知行合一)처럼, 말과 행동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사야예언서의 말씀은 훨씬 더 멋있는 상상을 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의 여러 곳에 살던 사람들이 놀라운 소식을 어떻게 들었기에, 선물을 들고 한 대상을 경배하러 모여들 거라고 이사야예언자는 상상했을까요?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나 통신수단이 발달한 시대에도 일어나기가 힘든 일인데, 예언자의 상상력을 대단합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세상은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도 아니고, 신앙을 말한다고 행동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이 신앙을 멀리합니다만, 그 모습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으로 다가오겠습니까?

 

하늘에 나타난 징조를 보고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과 정성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는 일도 아무나 하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일부를 덜어내어 주는 일이고, 내가 더 크고 좋은 다른 것을 기대할 때 할 수 있는 행동일 것입니다. 결국 선물은 재물의 많거나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일어날 일을 만나는 준비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하느님이나 교회공동체에 바친다고 해서, 내가 바친 것으로 만들어진 하느님의 것을 다시 돌려받는 상속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니, 그렇게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쪽에 우리 마음과 생각을 둘 것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한 해를 시작하면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올바르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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