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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22: 성(性),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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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7 ㅣ No.1512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22) 성(性),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생명으로 가는 동행의 길…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

 

 

다음은 남자 친구의 집요한 성관계 강요를 받으면서 성관계를 해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여학생이 미디어 리터러시 성교육을 접하고 쓴 깨달음의 글이다.

 

“‘TV에서 광고하는 피임약을 먹으면 성관계 문제로 남자 친구와 싸우지 않을 수 있고, 또 그 광고처럼 낭만적인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저는 우연히 생명과 책임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에 입각한 성교육을 여러 번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피임법이 아니었고, 성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인생 전체와 결합해 있는지를 깨우쳐 주는 체계적인 교육이었습니다. 이 교육을 받으면서 저는 남자 친구와 인생의 지향점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관계와 관련된 끝이 보이지 않는 실랑이 끝에 결국 헤어졌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성관계는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을 긍정할 수 있을 때, 남녀 모두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마음과 실천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을요. 피임이 100% 임신을 막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내가 임신을 하면 거의 100% 낙태로 등 떠밀린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성관계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비행기를 굳이 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성관계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녀가 결합하여 생명을 향해 가는 동행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책임성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여학생은 강의를 듣고 나서 자신의 연애가 로맨스와 성관계에만 초점이 있었지 둘 사이의 인격적 신뢰나 장기적 인생 계획에 대해서는 거의 공유되는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 보고 차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대화 주제가 성관계로 가면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만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되는데 성관계를 빠르게 하고 싶지 않고, 피임이 완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걸 믿고 성관계를 할 수 있느냐?”고 하면, 남자 친구는 “그러면 너는 사고 위험이 있는데, 자동차는 어떻게 타느냐?”고 면박을 주었기 때문에 데이트가 늘 싸움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성관계와 임신’의 짝이 ‘자동차와 교통사고’의 짝과 동급일까? 교통사고는 자동차를 이용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과율의 사건이 아니지만, 성관계는 임신을 유발하는 유일하고 필연적인 원인이다.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지만 우연한 임신은 결코 있을 수 없는데, 해괴한 논리로 성관계를 강요하는 마음 안에는 여자 친구를 진심으로 아끼고 책임을 다하려는 사랑을 찾기 어렵다. 이 여학생은 남자 친구가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별을 결정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를 만나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용기 있고 지혜로운 선택이다.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고 책임의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이 여학생은 그런 남자를 만날 것이다.

 

 

남자가 배워야 할 성적 가치관은 책임

 

남녀의 성적 결합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그 생명은 반드시 돌봄을 필요로 하므로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필자는 이 책임의 가치관을 남자 청소년들에게 학습시킬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무절제한 욕망을 자유로 포장하는 사회에서 책임을 학습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도 교육자는 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막막하죠. 오늘도 행여나 일이 있는 줄 알고 갔는데 없다고 하니까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당장 아기 분유도 다 떨어져 가는데 걱정이에요. 사랑하면 ‘돈도 필요 없고, 이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걸 뼈저리게 느끼는 거예요. 사랑하기 위해서는 돈도 있어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죠.” 

 

KBS 현장르포 동행 ‘스물넷 아빠의 첫 겨울’에 소개된 아빠의 인터뷰다. 이 아빠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막노동도 하고 편의점 일도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꽃게잡이 배를 타는데 승선 첫날 뱃멀미 때문에 일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나약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당연히 처자식 보기가 부끄럽죠.” 배에서 쫓겨난 후 꽃게만 싣고 육지로 돌아가는 다른 배에서 한 말이다. 그래도 이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멀미 안 하나 보네요?” “네, 여기서 또 토해버리면 또다시 물 건너간다는 생각으로 멀미해도 삼키고 해서 버텼죠. 이제 적응됐어요.” 며칠 후에 다시 찾아간 취재진이 배 위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와 나눈 대화다. 솟구치는 구토를 삼켰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아이가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아빠의 책임이고 사랑이다. 남자 청소년들은 이런 책임의 가치관을 배워야지, 콘돔으로 대표되는 피임을 먼저 익혀서는 안 된다. 가난한 이 부부에게서 책임의 동반 관계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이 둘이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책임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이 온전한 사랑을 먼저 배워야 한다.

 

 

책임과 존중이 없는 성관계는 ‘고통’ 뿐

 

성과 생명은 사랑과 책임의 끈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 넷이 분리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는데, 성관계를 놀이화 하는 소비사회는 이 넷을 분리해서 사는 것이 멋지고 아름답고 진보적이라고 거짓 포장을 하므로 많은 사람이 속아서 큰 고통을 겪는다. 이 사실을 정확히 청소년들에게 깨우쳐 주려면 “성관계는 언제 해야 성관계가 행복으로 이어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법정 스님이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다. 

 

“인연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 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 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 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강의를 들어 보니 제가 지금 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라며 울먹이는 여대생을 만난 적이 있다. 필자는 이제 깨달았으니 다시는 벌 받지 말고 헤어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은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서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별을 말하려 하면 “동영상을 아빠에게 보낸다” “엄마에게 보낸다” 하며 협박이 이어지기 때문에 꼼짝없이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놀이처럼 쉽게만 생각했던 성이 결국에 사람을 잡는 올가미가 된 것이다. 이것이 성을 놀이화한 사회의 큰 비극이다. 식별력을 키워주는 예방 교육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5월 6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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