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초점 주의의 오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802

[심리학이 만난 영화] 초점 주의의 오류

 


1920년대 파리로 가는 시간 여행

 

2010년 파리의 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밤거리를 홀로 헤매다 지쳐 길가의 계단에 걸터앉은 미국인 여행객 길(오웬 윌슨). 그의 앞에 푸조 자동차 한 대가 멈추어 선다. 돈 많은 자동차 수집광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1920년대식 클래식 푸조. 자동차 문이 열리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초대한다. 푸조를 타고 길이 도착한 파티. 그곳은 놀랍게도 1920년대의 파리였다.

 

길에게 1920년대의 파리는 가장 카리스마가 넘치는 과거다. 그가 매혹된 헤밍웨이나 피카소와 같은 작가들이 걸작을 만들고, 인생과 예술에 대해 토론했던 그 시절. 푸조를 얻어 타고 길은 자신이 꿈꾸던 가장 아름다운 과거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에는 길이 원하던 모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예술가들과의 만남이었다. 길은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나고, 그들은 길을 헤밍웨이에게 소개시켜 준다. 헤밍웨이는 길이 쓴 소설을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비평가 스테인에게 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스테인의 집에서 피카소와 함께 온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를 만난다. 아드리아나(감독이 만들어 낸 캐릭터로 실존하지 않은 인물)는 피카소의 연인이지만, 예전에는 모딜리아니와 사귀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피카소를 버리고 길에게 다가온다. 길은 1920년대로 가서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진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11년 작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감추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길이 현재의 파리뿐만 아니라 과거의 파리도 찾아간다는 점이다. 그는 대낮에 환한 파리의 현재를 경험하고, 자정이 되면 어둠에 잠긴 파리의 과거를 맞이한다.

 

현재의 파리는 눈부시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파리에서 현재보다 더 눈부신 사람들을 만난다. 파리에서 숨 쉬며 살았던, 걸작들을 만들어 낸 수많은 천재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벨 에포크의 파리

 

파리의 밤거리. 아드리아나에게 귀걸이를 선물하던 순간, 마차 한 대가 그들 앞에 멈춘다. 그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벨 에포크(Belle Epoque), 곧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던 1890년대의 파리이다.

 

아드리아나에게 그 시대의 파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시대다. 마차는 그들을 아드리아나가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시절’의 레스토랑 맥심으로 데리고 간다, 마치 푸조가 길을 그가 꿈꾸던 황금시대인 1920년대의 파리로 데려갔던 것처럼 말이다.

 

아드리아나와 길은 맥심에서 아드리아나의 연인이었던 로트렉을 만난다. 로트렉은 그들에게 친구인 고갱과 드가를 소개한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1890년대의 파리에서, 자신의 마음속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살던 1920년대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다.

 

흥미로운 점은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고갱은 아드리아나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세대가 공허하고 상상력도 없다며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불평한다. 고갱에게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가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2000년대를 살던 길에게는 1920년대가 황금시대였지만, 1920년대를 살던 아드리아나에게는 1920년대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현재에 지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아드리아나에게는 1890년대의 파리가 황금시대였지만, 1890년대를 살던 고갱에게는 1890년대는 공허한 현재에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현재는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주변 사건을 간과하는 초점 주의의 오류

 

현재의 삶에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사랑하고, 취직하며, 결혼하는 것 등이다. 이런 일은 우리 인생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중심 사건이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는 중심 사건 외에도 주변 사건이 더 많다. 중심 사건을 완성하거나 삶 자체를 유지하려고 어쩔 수 없이 수행하고 겪어야 하는 일이 널려 있다.

 

이를 테면, 결혼이라는 중심 사건은 수많은 주변 사건을 수반한다. 예식장을 잡고, 청첩장을 돌리며, 신혼여행을 예약한다. 이 바쁜 와중에도 연말 정산 마감일은 하루도 봐주지 않고 다가온다. 음식물 쓰레기는 악취를 내뿜기 전에 내다 버려야만 한다. 결정적으로 결혼식 날 비가 내린다. 덕분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중심 사건만 고스란히 즐길 수는 없다. 현재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삶을 지켜보는 경우에는 주변 사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의 사건이나 다른 사람이 경험한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경우에 사람들은 중심 사건에만 주목하게 되고 주변 사건의 영향은 간과하는 경향을 초점 주의(focalism)의 오류라고 한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는 예쁜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결혼식만 보이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결혼 과정에서 처리해야 했던 귀찮고 짜증 나는 수많은 주변 사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하객들은 당사자들이 실제로 느낀 행복감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과장된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다.

 

 

왜 내 인생만 우울하지

 

누리 소통망 서비스(SNS)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유다. ‘남들은 다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우중충하지?’ SNS에 올라온 사진들은 모두 환하다. 해외여행에서부터 유명 음식점의 사진까지 승리의 환호를 올리며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바로 인생의 승자라고 외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시시콜콜한 일상과 씨름하고 있는 내 인생만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같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서 우리가 주로 보게 되는 것은 중심 사건들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우리는 타인의 중심 사건만 보고 상대방이 얼마나 행복할지 추정한다. 그런데 SNS는 타인의 삶에서 중심 사건만 보는 초점 주의의 오류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SNS에 올라온 사진들은 인생의 중심 사건 가운데 좋은 것만 고르고 고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특정 부분만을 선택하고 편집해서 올린 것이다. 심지어 과장하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상대방이 공개한 중심 사건에 대한 사진 몇 장만으로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보다 엄청나게 더 행복할 것이라 착각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는 것이다.

 


현실에는 현실의 비가 내린다

 

길과 아드리아나, 그리고 고갱이 열망하는 시대는 그들의 기억 속에 오직 중심 사건만으로 구성되었다. 자신들이 흠모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라는 중심 사건만 있기 때문에 그 시절이 황금시대로 보이는 것이다. 골치 아픈 주변 사건으로 넘쳐 나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시절이 옛날에는 있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옛날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도 중심 사건만 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꿈과 낭만이 있었는데,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하루하루 팍팍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아름다운 시절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길은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걸으려는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도 없는데 사랑이라는 중심 사건이 시작되려는 순간에 비라는 번거로운 주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망칠지도 모르는 비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것을 걱정하는 길에게 그녀가 말한다. 젖어도 상관없다고, 파리는 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이다.

 

현실에는 현실의 비가 내린다. 그래서 현실은 늘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비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즐길 수 있다면, 가끔은 비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더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전우영]



1,80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