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현대 그리스도교미술 산책12: 조르주 브라크와 바니타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30 ㅣ No.214

[현대 그리스도교미술 산책] (12) 조르주 브라크와 ‘바니타스’


신앙에서 찾아지는 절망 속의 구원



조르주 브라크.

입체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는 20세기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남긴 인물이다. 전통과 결별한 아방가르드로서의 입체주의는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고, <우편물>이라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단순한 물체로 파악된 대상은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도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었다. 형태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브라크의 초기 입체주의 작품은 일견 건조하고 표피적 새로움만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두개골과 묵주, 그리고 십자가를 그린 <바니타스(Vanitas)>는 이전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이 작품은 여전히 입체주의의 표현방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새로운 형태의 창조와 조형적 효과에만 몰두하는 대신, 종교적 소재들을 통해 ? 입체주의 작품으로는 다소 뜻밖에도 - 깊은 상징성과 종교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니타스’는 코헬렛 1장 2절,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의 라틴어,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서양미술사에서는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클라스의 정물화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두개골이나 촛불, 화병의 꽃이나 모래시계 등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이 주로 그려졌다.

 
- 
‘바니타스’, 1938, 캔버스에 유채, 크리거 미술관, 미국 워싱턴.


이전의 입체주의 작품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종교적 소재, 그리고 생경하고 강렬한 색채가 <바니타스>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브라크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것일까? 십자가와 묵주, 그리고 두개골은 당시 브라크가 처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는 동안, ‘퇴폐적’ 화가로 낙인찍힌 브라크는 나치 장교들에 의해 감시당하는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화면 오른쪽에 그려진 두개골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과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브라크는, 묵주에 둘러싸인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화면 왼쪽에 배치함으로써, 절망적 상태에서 구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톨릭 신앙에서 찾고자 하였다. 브라크는 세심하게도 서른세 개의 묵주알을 그려 넣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을 상징하며, 한 알 한 알 따라가며 바치는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삶이 결국 십자가에서 완성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구원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따라서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는 묵주의 형상은, 십자가를 통해 얻게 될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십자가의 배경에 쓰인 자색과 홍색은 재의 수요일과 사순시기, 그리고 성주간에 사용되는 매우 직접적인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의미하며, 이는 또한 브라크가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을 수난과 순교의 여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편물’, 1914, 꼴라주,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비록 브라크 자신은 <바니타스>의 종교성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가톨릭 신자의 길을 걸었던 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신앙의 빛에 따라 작품을 완성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전쟁 당시, 6년 동안이나 같은 주제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는데, 이는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상태에서, 그리고 죽음이라는 절대적 명제 앞에서 인류가 희망을 둘 곳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상을 극명히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브라크는 만년에 노르망디의 바랑주빌(Varengeville)에 정착하였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네 언덕에 위치한 성 발레리 성당에는 그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성당 한쪽에 마련된 묘지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화가로서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가, 마치 그의 작품 <바니타스>가 보여주듯 모든 예술적 성취와 명예를 뒤로한 채, 신심 깊었던 그의 부인과 함께 고요히 잠들어 있다.

*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6월 29일,
조수정(미술사학자)]



6,18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