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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소공동체, 멈출 수 없는 교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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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29 ㅣ No.86

[20+4 _ 소공동체소위원회] 소공동체, 멈출 수 없는 교회의 길

 

 

필자는 지난 11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산하 소공동체소위원회가 계획하고, 호세 마린스 신부(브라질)와 제리 프락터 신부(영국), 그리고 이어돈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제주교구 금악 성당)가 공동으로 진행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11월 27~30일, 아론의 집)에 참석했다. 이 글은 단순히 세미나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공유했던 소공동체(교회)에 대한 체험과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세계의 각 교회가 놓인 구체적 상황의 차이에도 교회가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점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우리들이 얻은 자극과 영감은 세계 교회가 안겨준 기쁜 선물이었고, 우리의 삶과 생각을 나눔으로써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교회)와 함께 계시어 사랑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현존이었다.

 

 

소공동체, 결코 멈출 수 없는 교회의 길

 

교회를 일컫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일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교회의 뿌리와 희망을 담은 표현이다. 이 정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심층을 두루 꿰뚫고 있다. 하느님 없이, 그분의 나라를 향함이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또 교회의 그 존재 이유와 목적을 헤아릴 때, 가장 먼저 꺼내보아야 할 기억의 거울이다. 이 거울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교회의 지금, 여기의 순례 길을 투명하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교회)의 전부를 투명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공동체는 전체 교회가 마땅히 바라보고 가야 할 길, 곧 하느님 나라를 추구한다. 그 때문에 소공동체의 이러한 궁극적 지향과 달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함께 어깨를 걸 수 있지 않을까?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보편교회)를 몸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흘리는 열정의 땀방울이 무엇이 그리 서로 다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스스로를 실현하고자 하는 교회의 열정이 그 뜻을 이루지 않고서는 사그라질 수 없듯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한국 소공동체의 순례 역시 멈출 수는 없다. 설령 한국의 소공동체가 때때로 자신의 지향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는 방식이 서툴러 그 지향의 진면목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소공동체의 지향 자체는 포기되거나 폐기될 수 없는 일이다.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교회의 새로운 존재방식이고자 하는 소공동체의 존재 이유 때문에도 그렇다. 또 우리 교회가 처한 현실은 결코 자족하거나 자만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 교회 안에서 소공동체의 의미와 희망

 

한국 소공동체는 현실적으로 교회 희망의 전부를 실현한다기보다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도상에 놓여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소공동체의 이상과 지향은 현실 속에서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으며, 장차 활짝 피어나야 할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열정 속에서 교회의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고 희망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도록 필요한 공을 들이고 꿋꿋이 기다리는 것이다. 볍씨가 무르익어 쌀이 되고 밥이 되어, 우리 몸속의 살과 피가 되기까지,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몸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봉헌이 되기까지.

 

(1) 소공동체 - 가난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 : 교회는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호세 마린스 신부는 소공동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물음에 “교회 내부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머물러선 안 되고, (본당을 넘어) 세상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무엇보다 소공동체가 실현해야 할 세상 속 교회의 역동적인 현존방식을 말한다. 곧 ‘세상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속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증언하는 교회의 존재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인 소공동체의 순례여정은 닫힌 공간 안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거처가 붙박이 침대와 같은 곳일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현존을 증언해야 할 소공동체 역시 교회 안, 본당 안에만 갇혀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소공동체 - 함께 참여하고 친교를 나누는 교회 : 어느 연구 발표회에 논평자로 참석한 한 대학교수의 말은 교회의 친교와 소통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는 신부님, 수녀님의 말씀과 의견을 늘 존중하기만 했고 따라야만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제 의견을 진지하게 개진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외람되나마 교회와 성직자가 평신도의 세속적인 상황, 관점, 요구, 능력을 좀 더 중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방적인 교화가 아닌 상호적인 대화가 더 많아지기 바랍니다.” 전문적 식견을 지닌 대학교수도 교회 안에서 입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형편이니 다른 수많은 교우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말의 독점, 선택과 결정의 독점, 운영의 독점, 권위의 독점은 결코 교회다운 모습이 아니며, 더 이상 교회의 특수성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오해될 수 없다. 더욱이 교회는 일방적인 교화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함께 성숙되고 서로를 양성하는 곳이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할 때 공동체는 풍요로워지고, 살아있는 교회를 체험할 수 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친교 안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증언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내 틀 속에 갇힌 하느님보다 더 크고 깊고 넓은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3) 소공동체의 토착화 - 소공동체의 보편성과 특수성 : 교회로서 소공동체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아우르는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 이는 소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보편성)을 구체적인 상황 속에 사는 세상 사람들(특수성),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실천함으로써 실현된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소공동체 토착화 문제의 본질이 있다!

 

따라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논의가 소공동체 토착화에 대한 다른 모든 논의보다 우선한다. 소공동체의 모임이나 복음 나눔의 방식 등과 같은 사안들은 구성원들의 창의적인 논의나 공동체의 구체적인 현실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화할 수 있다.

 

(4) 소공동체의 정신(지향)과 사목 실천의 일치 : 현실 속에 육화되지 않은 정신은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과 같다. 소공동체의 지향이 사목현실 속에서 구체화되려면 우선 그 지향에 대한 깊은 인식과 탄력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향 자체가 훼손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 없이 이루어지는 실천은 때때로 지향 자체를 심각하게 흐려놓을 수 있다. 이는 한국 소공동체 역사 안에서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교회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소공동체가 통합적인 안목으로 복음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사목의 모든 영역에서 현실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방향은 크게 환영받을 만하다. 소공동체의 지향과 이를 가시화할 수 있는 공동체 구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조는 물론 교회의 본질적인 자기실현을 위한 친교, 예배, 증거, 나눔과 섬김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곧 공동체 구조는 공동체 구성원의 주체적 참여와 깊은 친교가 가능한 사목형태여야 한다. 또 자유로운 상호소통을 통한 의사결정이 존중되어야 하며, 교회의 인격성(형제-자매애)을 폭넓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공동체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 사랑의 보편적 성사(또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 사랑의 육화)로서 구현될 수 있는 방향에서 모든 역량을 기꺼이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 김정용 베드로 신부 - 광주 가톨릭 대학교 교수이며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09년 1월호, 김정용 베드로 신부(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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