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사순 2 주일-가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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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2-02-23 ㅣ No.355

사순 제 2 주일 (가해)

 

            창세 12,1-4ㄱ  2 디모테오 1,8ㄴ-10   마태 17,1-9

     2002.  2. 24.

 

주제 : 우리에게 영광은 언제 오는가?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2월을 마감하는 주간의 첫날이며, 사순 두 번째 주일입니다.

새로 맞는 한 주간의 첫날을 지난 주간의 첫 날과 같은 날이라고 생각할 분도 있겠습니다만, 생각이 거기에서 멈춘다면 그런 사람의 삶은 활기가 없을 것이고 내가 지금 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이루려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질문을 하고 알고 싶어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내 맘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내 맘대로 떠날 수 있는 곳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좋은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올 해에는 봄이 빨리 온다고 합니다.  지금의 기온이 그대로 봄으로 이어진다는 말도 합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은 그렇게 변합니다.  소리 소문 없이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보고 신앙인도 적당한 예고가 있을 때 앞을 준비하는 일에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일복음에서 우리는 당신의 삶을 방해하기 위해서 찾아온 유혹을 효과적으로 물리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온 유혹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들이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다가온 유혹들에 대해서 사람들 누구나  예수님처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혹과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고, 뭔가 얻고 싶은 특별한 것이 있어 유혹에 넘어가면서도 마치 자신은 커다란 선행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먹는 것 때문이라면 세상에서 범할 수 있는 모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유혹, 이름 몇 글자 남 들 위에 드높이려고 영광을 찾으려고 하다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에 대한 유혹, 내 손이 미치는 곳에 모든 것을 옮겨놔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하는 소유에 대한 유혹들이 그것입니다.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는 유혹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대해야 합니다.

 

오늘 사순 두 번째 주일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유혹을 잘 이겨낸다면 우리에게 다가 올 영광스러운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 ‘사람의 생각으로 오염되지 않은 높은 곳’을 찾아가십니다.  거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참된 영광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일도 없이 베드로는 인간의 생각이 담긴 말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으로 머문다면, 베드로 사도가 본 모습을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을 기대해서라든가 상상하는 마음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면 그래도 반쯤은 효과를 거두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주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광은 우리에게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 일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해도 하느님이 영광을 베풀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명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유혹, 우리의 발목을 자꾸만 잡아채고, 앞을 보는 일보다는 뒤를 돌아보고 거기에 만족하게 하며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게으름을 올바로 이겨내고 극복해야만 하느님의 영광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자비롭고 인자로운 분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이 초대를 올바로 따랐던 제자, 그 선택을 올바르게 이해했던 제자들만 숨겨진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구체적인 지침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 삶이 다르고 여러분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고, 우리 각자에게 원하는 하느님의 의도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각자에게 주어진 현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게나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능력과 자격이 있음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나이 일흔 다섯 살이라고 하는 ‘인간적인 조건’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소리에 따라 고향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아브람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아브람보다 약 4000년을 늦게 태어나 사는 우리는 아브람의 그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성서를 아무리 찾아봐도 왜 아브람이 그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내용을 통해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삶의 지침으로 알아들어야하는 것뿐입니다.

 

초대교회의 목자 디모테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거룩한 백성으로 머무는 것은 우리가 노력해야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벗어난다면 그 안에 함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삶은 영광을 찾아갑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영광스럽게 드러나고 가슴을 쭉 펴고 뻐길 수 있는 모습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난 아브람이 가졌던 마음’을 새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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