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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13: 존 헨리 뉴먼 추기경과 시노달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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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31 ㅣ No.731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13) 존 헨리 뉴먼 추기경과 시노달리타스


구성원 모두의 조화로운 일치로 ‘함께하는 교회’ 방향성 제시

 

 

- 존 헨리 뉴먼 추기경 시성식을 하루 앞 둔 2019년 10월 12일 로마 성모대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성모대성당 대사제 스타니스와프 리우코 추기경이 뉴먼 추기경의 초상화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CNS

 

 

신자들에게 교회의 신앙을 묻다: 존 헨리 뉴먼의 교회 이해

 

존 헨리 뉴먼 추기경(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19세기 영국의 문학자이자 철학자이고, 신학자이자 존경받는 사목자였다. 그는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가톨릭교회의 진리와 교회의 현대적 적응을 위해 활약했다.

 

89년의 생애는 부침이 심한 인생이었다. 특히 그가 살던 시대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이 꽃을 피웠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욕망을 자유롭게 펼쳤고, 교회 가르침과 기존 사회의 도덕적 규범 역시 약화됐던 시기였다.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학문과 사회적 분위기는 교회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다. 그때까지 교회는 근대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며, 새로운 환경에 맞는 교회적 쇄신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20세기 중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때까지 지속됐다.

 

특히 근대의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특성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 욕망의 자유로운 실현이었고, 교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신앙의 전통을 염두에 두면서 변화된 사회와 의식에 맞는 교회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미 그는 150년 전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관, 즉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 교회 구성원의 평등과 고유한 역할에 대해 제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교회의 시노달리타스가 뉴먼 추기경의 정신적 유산에서 기인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는 어느날 한 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며, 세대를 거치며 변하지 않은 채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고 넓어지는 강물이나 성장하는 씨앗처럼 활발한 변화의 역동 속에서, 생명체와 창조물이 다양한 모습과 의미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예컨대, 삼위일체 교리가 예수의 첫 번째 제자 그룹 안에서 완전히 성장하고 완성된 다음, 후배들에게 전달된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성장하는 데에도, 교부들과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1000년의 세월이 걸렸다. 뉴먼은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중요한 교리가 결정되는 데도 늘 질문하고, 숙고하고, 논의하면서 발전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순하게 시간이 흐르면서 여물어 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고민하는 충만한 마음의 작용이 발현되는 형식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이 성직자들의 몫이 아니라 모든 세례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몫이라고 설파했다.

 

 

교리문제를 신자들에게 자문하기

 

평신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영국의 가톨릭 신앙교양지인 「램블러」의 1859년 7월호에 실린 뉴먼의 논문 ‘교리 문제에 대해 신자들에게 자문하기’(On Consulting the Faithful in Matters of Doctrine)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 논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뿐만 아니라, 시노드 교회 만들기가 한창인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즉 함께 가는 교회를 향한 길의 주체들과 그 관계의 방향성에 대해 이미 19세기에 뉴먼 추기경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뉴먼은 교회의 일, 심지어 교리와 같은 것을 정할 때도, 그 준비 단계에서 주교단만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응당 물어야(consult)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교회는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로 나뉘어 이해됐다. 즉 당시 교회는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성직자와 그것을 수용하고 배우는 평신도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뉴먼은 영어에서 ‘자문 consult’은 누군가와 의논한다는 용례로만 쓰이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신뢰의 태도를 함의한다고 설명한다. 대중적이고 일상적 용례에서 ‘자문’은 신뢰와 경의를 나태내며 복종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권위가 어떤 사안에 관해 물어지는 사람의 의견에 귀속된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없다. 나아가 뉴먼은 ‘자문’ 혹은 ‘묻는 것’(consult)의 영어적 의미에서는 ‘판단을 청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신앙이 사도 전승의 증거로서 존재하고 있기에, 주교단은 그것을 감지하고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나 의식의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는 전례의 습관이나 보편성의 증인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리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에 의해 결정됨

 

뉴먼은 교리 결정에 있어 신자들에게 물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세례받은 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성령을 식별하는 능력인 ‘신앙 감각’에서 기인한다. 즉 교회에서는 교의결정의 준비단계에서, 교황좌는 예전부터 신자의 신앙 상태를 논외에 두는 것이 아니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자의 신앙 감각(sensus fidelium)과 신자의 동의(consensus fidelium)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시노달리타스 교회 쇄신에서 중요한 수행 주체로서 세례받은 ‘하느님 백성’이 신앙적 삶 안에서 일치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이유가 신자들의 ‘신앙 감각’ 때문이라는 의미다. 신자들의 신앙 감각에 준거해 신자들에 대한 자문의 정당성을 뉴먼은 ‘성모무염시태 교리’를 예로 설명한다. ‘성모무염시태 교리’가 비오 9세에 의해 교의로 선포된 것과 관련하여, 뉴먼은 신자들의 신앙에 대해 주교들이 그들과 함께 묻고 들음으로써 이 교의가 확정됐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원래 “성모무염시태 교리”의 전례는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서 존재해 왔던 것이고, 교회의 판단에는 원천적으로 사목자와 지혜로 인도된 신자의 신앙이 함께 녹아 있다.

 

신자들은 이렇게 교도권과 함께 교회의 교리를 결정하고 교회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신앙 감각에 기초하여 교회의 사목자와 신자가 함께하는 실천·전례·기도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조화로운 일치 안에서 이뤄내는 신앙 전승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뉴먼은 교도권을 정의하며, 그 중요 요소로 성직자뿐만 아니라 신자 전체 교회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교회의 새로운 이해와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이정표로 간주할 수 있다. 뉴먼은 신자들의 신앙교리 관련 의견에 대해서 주교에게 자문하기보다 신자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 당시 놀랍고도 독창적이었다.

 

신앙의 문제에 대해 신자의 공통된 판단과 공유감각이 중요한 것이다.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신앙의 교의 결정에서 신자의 동의를 고려해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 요구에 뉴먼은 응답한 것이다. 시노드 교회 혹은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 만들기가 한참인 오늘날, 150년 전 개혁가의 치열한 고민은 여전히 울림이 있다.

 

[가톨릭신문, 2023년 7월 30일, 최영균 시몬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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