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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4: 제3장 무엇이 생태계를 파괴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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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1 ㅣ No.764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4

 

제3장 무엇이 생태계를 파괴시켰는가

 

 

회칙의 반환점인 제3장의 좌표와 구성

 

지금까지의 연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칙은 제1장에서 지구에서 진행되는 생태계의 파괴양상을 고발하고, 제2장에서 그리스도인 신앙의 뿌리와 생태문제의 연관성을 정리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에 바탕을 둔 청지기 정신이 그 뿌리이며, 따라서 생태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기반은 인간 중심주의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는 자연에 대한 지배적이며 독점적인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살피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도 알아보았다.

 

이제 회칙은 제3장에서 생태 위기의 근원을 분석한다. “인간의 삶과 활동을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이 왜곡되어 현실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빗나가게 되었습니다”(101항). 이러한 잘못된 특정한 방식은 제3장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이다.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문제점

 

과학기술 발전의 공로 인정

 

회칙은 기술 발전의 공로와 인간에게 선사한 혜택, 과학 기술자의 노고를 치하하는 데에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증기기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공학이 제공한 엄청난 가능성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인간 창의력의 놀라운 선물(102항)로 인정한다. 더 나아가, 회칙은 핵에너지, 유전공학 등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엄청난 힘도 인정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104항).

 

회칙이 기술 발달에 치하하는 긍정적인 기여는 소중한 수단의 생산에 그치지 않고, 과학기술이 창출해 낸 아름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까지 포함한다(103항).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는 예술가가 그러하듯, 과학자가 기술 개발의 발전에 헌신하도록 이끌었다는 이해가 깔려있음을 볼 수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의 핵심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과학기술에 대한 회칙의 비판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학기술 자체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과학기술 자체가 아닌, 과학기술에서 그 힘의 분배 방식과 성장 방식, 성장 속도 그리고 기술 중심적 가치관이 내포하는 위험을 인식하지 않는 가운데 그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삶의 전반에 흡수시키는 우리의 맹목적인 신뢰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회칙의 우려는 그 엄청난 힘이 소수의 힘에 집중되어 있는 점(104항)과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성숙에 집중된다. 과학기술의 힘이 늘고 진보가 이루어질수록 “안전, 유용성, 복지, 활력, 가치 충만의 증가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경향”을 지적하는 것이다(105항).

 

또한 회칙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 그리고 양심의 발전 속도를 지적하고 있다. “자유의 규범이 아니라 이른바 유용성과 안전만이 요청되는 경우에는 인간이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위험이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105항). 회칙이 지적하는 문제는, 인간이 과학기술의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길러줄 건전한 윤리와 문화, 영성을 지니지 못한 점이다.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위험성

 

과학기술의 발달 그 자체보다는 이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회칙은, 우리 삶의 가치관으로 스며들어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패러다임이 지니는 문제점의 시작은, 사물 자체의 가능성을 존중하며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을 모색하기보다 외부 대상을 파악하고 지배하려는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자세(106항)이다.

 

이때 소유, 지배, 변형의 의도를 지닌 채 무한 성장의 개념을 탑재하고, 지구가 지닌 한계를 넘어 최대한 쥐어짜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106항) 회칙의 비판 요지이다.

 

동시에 기술의 산물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단지 도구로만 이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세도 경고한다. 이는 기술의 산물이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권력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적 기회를 통제하는 점에서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도구로서의 기술 인식과 관련하여 회칙은, 기술을 대표하는 요소들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요소들과 자연의 요소들을 모두 장악하려 함에 따라, 개개인의 결단력이나 온전한 자유, 고유한 창조성 등의 자리가 좁아지는 사태를 고발하고 있다(106항).

 

회칙은 인류가 현재 경험하는 놀라운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점차 가속화하는 불균형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제안하면서, 기술이 통합적인 발전보다 세분화되어 발전되는 양상에서 그 문제점을 찾아낸다(109-110항).

 

곧, 세분화되는 만큼 구체적인 적용의 효율은 증가하지만 사물들 사이의 관계나 과학과 인간의 관계, 생태계를 감안하는 통합적 안목과 감각을 상실한다. 또한 이 기술이 구체적인 삶의 의미를 해석하는 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류는 이제 다른 시각과 사고방식에 입각한 정책과 교육, 생활양식, 영성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이 좀 더 건전하고 인간적이며 사회적인 온전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111항).

 

이 지점에서 회칙은 ‘용감한 문화혁명’을 제안한다. 곧, 과학기술의 속도를 줄여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과대망상으로 잃어버린 가치와 중요한 목표를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의 필요성

 

회칙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인간 중심주의를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기술 이성을 앞세운 현대의 인간 중심주의가 인간의 지위와 자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는 공동 관심사와 사회적 결속 강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저해한다(116-117항). 협조자가 아닌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 자신을 올려놓으려고 하는 인간 중심주의가 올바른 인간관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회칙은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가 결코 생태 중심주의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한다. “생태 중심주의는 오늘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며, 문제들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불균형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지성, 의지, 자유, 책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이 세상을 책임 있게 대할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118항).

 

회칙은 다른 모든 피조물에 견주어 인간의 특별한 가치를 인정하는 그리스도교 사상만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전개된 그릇된 변증법을 극복할 새로운 종합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121항).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만이 온전한 생태적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열어준다고 밝힌다.

 

 

바람직한 인간 중심주의의 구성요소

 

제3장의 후반부에서는 실천적 상대주의를 비판하며, 객관적 진리나 확고한 원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23항). 그 원칙은 노동의 가치를 배제하지 않는 것과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인간 소명의 숭고함에 대한 인식이다.

 

회칙은 무엇보다도 창의력, 미래 설계, 재능 계발, 가치 실현, 타인과의 대화, 경배로 정리되는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한다(127항). 또한 기업이 단기간의 금전적 이익보다 안정된 고용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128-129항).

 

한편, 회칙은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를 귀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힘의 위험성을 늘 경계하라고 하며, 인간 활동의 목적과 효과, 맥락과 윤리적 한계를 끝없이 성찰할 것을 조언한다.

 

또한 피조물의 본질에 따라 자연이 발전하도록 자연에 영향을 주는 개입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에만 좌우되지 말라고 강조한다. 유전자 변형 곡물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개발이 가져온 정보의 편향적 소유와 통제, 그리고 인간 배아의 연구에서 보이는 인간 가치의 평가절하를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제3장은 회칙 전체의 중심점에서 현재 인류가 직면한 생태문제의 위기를 기술 과학적 패러다임과 인간 중심주의에서 찾으면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렇듯 정교한 논리의 전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교회 내의 환경운동이 신앙에 입각한 인간 중심주의를 정확히 이해하며 실천적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점검하고, 행동수칙과의 일관성과 정합성(整合性)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톨릭교회의 신앙은 신학적 틀 내에서 다듬어져 전승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불투명한 이론으로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위험을 방지하려는 교회의 지고한 투신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두 개의 장은, 지금까지 탄탄하게 다진 이론적 기틀 위에 실천적이며 신앙적인 측면의 반성과 제안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그 내용을 점검하며, 회칙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신학적 일관성과 엄밀한 논리, 그리고 탄탄한 구조를 보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함께한 독자 여러분도 실천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소 지루한 경향이 있는 지금까지의 이론적 부분을 꼼꼼히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유흥식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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