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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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 성당의 피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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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10 ㅣ No.267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3)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 성당의 ‘피에타’


예수의 죽음과 성모의 고통, 빛이 되다

 

 

- 마틴 하우슬레, ‘피에타’,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 성당, 1962.

 

 

일제 강점기에 이어 6·25전쟁이라는 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에 큰 변화나 발전은 없었다. 당시 기록이나 실물을 찾지 못해 더욱 그렇겠지만, 1970년대 한국 작가들이 작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기까지 역사적으로 하나의 큰 공백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서양으로부터 유입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사례들이 남아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이후 교회미술 쇄신 움직임이 있어 서울 혜화동성당 등 근대적 교회 건축이 출현하고 국내 여러 미술 작가들이 협력해 교회미술에 봉사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됐다. 이 같은 모습은 1962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해 두드러지는데, 이 시기에 설치된 국내 스테인드글라스 중 하나가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다.

 

1962년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 마리아첼의 가르멜 수녀회가 국내에 진출해 대구에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도입된 사례다. 아쉽게도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작품 유입 경로를 알 수 없지만, 작품에 남아 있는 서명을 통해 작가명, 제작지, 제작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안 되는 1960년대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성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성당은 봉쇄 수녀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수도자석을 따로 두고, 별도의 문을 설치해 일반 신자들도 함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수도자석과 신자석을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제대의 방향을 사선으로 두었다는 점이 혁신적이다. 이 성당 입구 상단에는 대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돼 있는데, 작품에 남아 있는 서명 ‘MARTIN HUSLE, FELDKIRCH, AUSTRIA, 1962’을 통해 작가 마틴 하우슬레(MARTIN HUSLE, 1903~1966)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틴 하우슬레는 오스트리아 화가로서 풍경화, 초상화 작업을 주로 하면서 대형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병행했다. 그는 1947년 회화 부문에서 ‘위대한 오스트리아인 상’을 수상하고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수도원 성당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피에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작품 중앙부에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과 그를 떠받치고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예수의 몸은 그의 고통을 더욱 강조하고 있고, 상체와 하체는 그 비례가 의도적으로 왜곡된 채 심하게 뒤틀려 있다. 죽은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아 떠받치고 있는 푸른색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는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로 넋을 잃은 모습이다.

 

이 작품은 다양한 굵기의 납선을 사용해 리듬감 있는 선을 연출했고, 강렬한 느낌의 선을 표현하고자 납선에 검은색 유약을 덧칠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강조된 선묘는 작품의 주제인 ‘피에타’에 표출된 격정적인 감정을 한층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 아래쪽에 표현된 부서져 쓰러진 십자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며 산산이 부서진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나타내며 피에타로 형상화된 예수의 희생과 죽음을 다시 한 번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작가의 홈페이지에는 이미지 자료 없이 한국 대구에 작품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작가 측에 작품 사진을 보냈는데, 아직도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아 다시 한 번 연락을 취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집필하면서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성당에 이 작품을 소개하고 완성된 책을 수녀원에 보내드렸는데, 얼마 후 수녀님들께서 작품 앞에서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시며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셨다는 내용의 자필 카드를 보내주셨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 마음에 새길 수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떠올려보니 가르멜 수녀원 성당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어진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10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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