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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사제,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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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5-31 ㅣ No.528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제]

 

 

지난해 6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사제의 해'가 6월 11일 막을 내린다. 창간 22주년을 맞는 평화신문은 사제의 해를 정리하고, 이 땅의 사제들 앞에 놓인 도전과 과제 등을 짚어보기 위해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와 함께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제' 기획 시리즈를 4회에 걸쳐 특집으로 시작한다.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소속 주교들의 집필과 대담으로 연재한다. 이 기획물은 교황이 사제의 해를 선포한 취지대로 사제직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영적 완덕을 향한 사제들 노력을 북돋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글싣는 순서>

 

1) 사제, 그는 누구인가 - 최기산 주교

2) 21세기 한국 가톨릭 사제들 앞에 놓인 도전과 과제 - 조규만 주교

3) 사제들의 쇄신과 영적 완덕을 위하여 - 유흥식 주교 

4)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 최창무 대주교와 대담

 

 

(1) 사제, 그는 누구인가


주님 성령에 의해, 주님 백성을 위한, 주님의 대리자

 

 

사제는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주님을 대리하여 행하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뽑으신 사람이다.

 

사제는 미사 때에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다"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의 몸이다. 너희는 모두 받아 마셔라. 이는 예수님의 피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사제는 한 인간으로 볼 때 부족함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시는 도구로 쓰시고자 뽑으신 사람이다.

 

사제는 하느님 이름으로 죄를 사하여 주기도 하고, 남녀를 부부로 축복하며 그 증인이 되기도 한다. 또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고 축복하는 병자성사를 거행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대단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사제는 부족한 인간이지만, 받은 임무로 보아 그의 신원은 놀랄만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두 번이나 "제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7,14.16 참조)라고 하셨다.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초월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제의 임무는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1. 가르치는 임무(munus docendi)

 

사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시던 일, 곧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이 사명을 수행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또 정통교리를 오류 없이 가르쳐야 한다. 특히 사도신경의 내용과 사랑 실천을 잘 가르쳐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직면한 사회 현상들이 너무나 복잡하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교리서」를 만들어 신자들이 배우게 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구속되고 있다. 심지어 국가 권력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구세주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처참히 돌아가셨기에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 인간은 이토록 존엄하기에 권리가 박탈되거나, 유린되면 가만히 구경만 할 수 없다. 정의를 부르짖어야 한다. 사제는 가톨릭교회 교리뿐 아니라 사회교리도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죽음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자살이 마치 위대한 일이나 한 것처럼 묘사되고, 그로 인해 확산일로에 있다. 낙태가 만연돼 있다. 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배아를 복제하는 연구가 계속되는데, 이 또한 살인이다. 사제는 죽음의 문화가 근절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사제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다른 학문에는 전문가가 아니다. 사제는 교리를 충실히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많은 교리교사들이 신학원을 통해 양산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교리를 가르치는 것도 대부분 평신도들이 맡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제가 가르치는 교리를 배우고자 한다. 사제는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곧 가르치는 임무이다.

 

 

2. 성화시키는 임무(munus sanctifican di)

 

신자들을 성화시키려면 먼저 사제 자신이 성화돼야 한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삶이다. 체험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시고, 그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믿고 그 사랑을 느껴야 한다.

 

사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1코린12,3 참조).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셔야 한다. 이것을 고백할 뿐아니라 그분과 대화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2코린 13,5).

 

사제가 먼저 영적으로 충만해야 신자들에게도 그 영성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시편 16장 2절은 사제들에게 중요한 말씀이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 먼저 사제가 주님과 함께 행복해야 신자들을 행복으로 안내할 수 있다.

 

굴곡진 세상사에 맥이 빠지고 실망한 사람이 성당에 와서 사제를 만나거나 수도원에서 사제를 만날 때,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사제 얼굴에 거룩한 영성이 새겨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어야 한다. 사제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인내하고, 친절하고, 시기나 자기 과시를 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겸손을 모범으로 보임으로써 자신이 가르치는 영성을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

 

 

3. 다스리는(봉사하는) 임무(munus guvernandi)

 

예수님께서는 남들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신 분이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살레시오수도회 이태석 신부는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다 갔다. 그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제 본연의 봉사자 역할을 충실히 한 사제이다. 사제는 어디에 속하든 주위 사람들 중에, 가련한 사람들에게 충실히 봉사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속을 보면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고통 중에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떤 이들은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 한다.

 

견진성사를 나가거나 무슨 모임에 가면, 많은 이들이 머리를 내 앞에 들이민다. 그리고 축복기도를, 혹은 치유기도를 해달라고 한다. 어떤 이는 암수술을 받았다며, 어떤 이는 암수술을 받을 거라며, 혹은 가정에 큰 문제가 있다며 너무나 가슴이 무너질 것 같으니 축복을 해달란다. 사제의 축복과 위로, 기도를 간절히 청하는 이들이 많다. 주일미사만 드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신자들을 보면서 '아무 문제가 없겠지!'하는 생각은 잘못이다. 사제에게는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위로와 힘을 줘야 할 임무가 있다.

 

사제는 한 공동체의 대표로서, 늘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동체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공동체가 주님 안에 일치하도록 노력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격려하고, 영원한 미래를 마음에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

 

이 시대는 영성 깊은 사제를 필요로 한다.

 

이 세상의 보이는 문제들, 지나가는 현세 문제들을 바라보고 해답을 구하는 사제도 필요하겠지만, 더 나아가 변하지 않는 가치, 더 영성적인 것들, 영원한 것들, 곧 영혼의 문제를 깊이 헤아리며 사는 사제를 요구한다. 성스러운 사제, 기도에 충만한 사제, 영적인 사제, 곧 예수님을 닮은 사제를 필요로 한다.

 

판관기 7장에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쫓아내는 내용이 있다. 기드온 군사는 3만 명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물가에서, 개가 핥듯이 물을 핥는 자를 모두 따로 세우게 하셨다. 그 수가 300명이었는데, 그들만을 데리고 가서 싸우게 하셨다. 만일 3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싸워 이기면 자기들 힘이 세서 이겼다고 착각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쳐서 이긴 것은 주님 돌보심이지 자신들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자주, 우리 세력을 키워 우리 힘으로 싸워 이기기를 원하는지 모른다. 착각이다. 우리 세력, 우리 힘을 믿어선 안 된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이것이 승리의 길이다.

 

사제, 그는 주님께서 뽑아 세우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변하지 않는 긍지와 함께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평화신문, 2010년 5월 30일, 최기산 주교(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 인천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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